긴 병에도 효자 있다

슬기로운 간병 생활 - 가족 간병인을 위한 자기 돌봄 프로그램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9살에 이르렀지만 건강 수명, 즉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나이는 73살이라고 한다. 인생 말년 6년은 병마와 싸우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건데. 2017년 기준으로 중증 환자의 한 달 간병인 고용비가 225만원, 이는 60대 부부의 최소 생활비 167만원을 상회한다. 그러다보니 가족 중 한 명은 직장도, 가정도,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환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암환자 보호자 310명 가운데 67%가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35%는 당장 치료가 필요하며,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해 본 보호자도 18%나 된다는 뉴스는 남의 일이 아니다. 

 

老-老 간병 시대에 ‘긴 병에도 효자 있다’는 모토로 가족 간병인을 돕는 강의가 열렸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열린 강좌 '슬기로운 간병 생활-가족 간병인을 위한 자기 돌봄 프로그램(2018.07.07~08.11, 총 6회 강좌)'이 그것이다. 경제적 정신적 파탄에다, 간병하다 골병든다는 비명이 나오는 현실에서 오아시스 같은 강좌가 아닐 수 없다.


 

이 강의를 진행한 PTC(Powerful Tools for Caregivers = 간병인을 위한 강력한 자기 돌봄 교육프로그램) 마스터 트레이너 이성희님을 인터뷰하고, 5회 차 수업을 들어보았다.


이성희 트레이너는 미국의 아시안보건복지센터에서 시니어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중 PTC를 접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를 돌본 경험이 있어 자원했다. 2011년에 마스터 트레이너 자격 취득 후, 교포 대상으로 강의했다. 암환자와 치매인 가족, 직업간병인, 老-老 커플 모두에게 도움 됨을 확인했다. 한국에도 PTC를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한살림 공동체 모임에서 가족 간병인들을 만나고서였다. 2017년 서울시 주민제안사업에 선정되어 성동구보건소와 함께 치매 보호자와 암환자 가족,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를 위한 '간병인 자기 돌봄'을 개설했다. 나무와 열매(중증 장애인을 둔 부모님들이 만든 협동조합)와 함께 장애 아동 부모를 위한 '자기 돌봄과 힐링 타임'도 진행했다.


2018년, 도심권50플러스센터 공유사무실에 입주한 건, 가족 간병인과 돌봄 전문가(직업 간병인, 요양사, 간호사, 간병 현장의 자원봉사자 등) 대부분이 5·60대이니, 50+세대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자기 돌봄을 전파해, 그 분들이 간병 전쟁터에 나가기 전 튼튼한 PTC 갑옷을 입었으면 해서였다. '슬기로운 간병 생활' 수업 공지가 뜨자, 16명 정원이 금방 찰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가족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거나 현재 돌보는 이들을 위한 자기 돌봄 치유 프로그램이므로 개인 사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원칙적으로 수업에 외부인 참관은 불허한다. 그러나 힘든 감정 다스리기, 감정에서 배우기, 내가 잃어버린 것, 우울증 다스리기를 이야기한 5회 차 수업에는 기자 외에도 세 명이 수강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참관했다. 국민보험공단 연구원, 간병인 사회적 기업 교육 담당자, 보건간호학과 교수였는데,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겠다. 

 

   

 

미소, 딸기, 파주댁 등의 닉네임을 가진 수강생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이야기했다. 페디큐어 해보기, 노래방 가보기, 한강다리 왕복하기, 흰머리 염색 등 소소한 것을 결심하고 실행한 경험을 나누며 활짝 웃었다. 아, 이런 평범하고 작은 일마저 결심하고 해야 할 만큼 여유가 없으셨구나.

'슬기로운 간병 생활'은 간병인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수업이구나 싶었다. 스트레스 다스리기, 스트레스 경감을 위한 도구, 부드러운 대화법, 부정적 자기 암시를 긍정적 자기 암시로 바꾸기, 점진적 근육 이완법 등 모두 현대인에게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간병은 국가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니, 간병하는 분이 죄책감 우울증 등을 떨치고 스스로를 돌보며 간병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성희 트레이너는 2017년 8월부터 PTC Class Leader certificate를 취득한 14명과 '마을살림 가족지원협회'를 설립 중이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지원 단체로 선정되었다니, '긴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곧 '긴병에 효자 있다'로 바뀌게 될 것 같다.

 

 

이성희
마음살림 가족지원협회 대표 PTC Class Leader & Master Trainer
사무실 :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
미국 PTC 본부 : www.powerfultoolsforcaregiver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