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설 배낭여행을 자주했다. 인심이 좋을 때라 처음 가는 동네에서도 배를 곯지 않았다. 넉살 좋은 친구와 같이 다니면 더 좋았다. 좀 넉넉해 보이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서 밥 한끼를 청하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약 40여년 전 처음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여행 한 적이 있다. 배낭을 메고 혼자 떠난 한여름 여행이었다. 당시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차비와 비상금만 겨우 준비해서 무작정 떠났다. 하회를 휘돌아 내려가는 낙동강변 솔밭에 앉아서 강건너 부용대를 오래토록 감상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부용대에서는 하회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높은 수직 절벽이 인상적이었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모양을 닮았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회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면서 우리 전통마을의 정취를 느꼈보았다. 배롱나무 붉은 꽃과 황토 담이 참 잘 어울렸다. 골목은 이리저리 휘돌아 다음 골목의 경관을 기대하게 했다. 마을 안쪽에 있는 양진당, 충효당까지 보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마땅한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종가댁에 들어갈 만큼 숫기가 있지도 않았으니 꼼짝없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에빠져 터덜터덜 걸어나오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날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솥을 몇 개 걸고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있었다. 내 표정이 간절한 걸 어느 어르신이 눈치채셨던 모양이다. 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하셨다. 하회마을은 그 밥으로 인해 평생 인심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내 기억에 자리 잡았다.

 

순천에 가면 낙안읍성이 있다. 성 안에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곳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농사를 짓기도 하고 수공예품을 만들기도 한다. 가을에 가면 초가지붕을 새로 갈아 얹는 추억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아주 이국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성곽 길을 걸으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감있는 마을 경관을 즐기는 재미가 아주 특별하다. 골목을 돌면서 대문이 열려있는 집에 들어가서 집 안을 구경할 수도 있고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를 꼬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특별하다. 적당한 폭의 골목길에는 감나무가 늘어져있고 장독대 옆에는 어김없이 작지만 아름다운 꽃이 피는 정원을 만들어 두었다. 여기 낙안읍성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 감동이 오래토록 남는다.

 

부산에 가면 감천 문화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아서 올해 제3회 멕시코시티 국제 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산비탈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수많은 집은 멀리서 보면 송곳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형형색색으로 색을 칠해서 더욱 환상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내국인 보다 외국인이 훨씬 더 많아보인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주민을 만날 수 없다.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마을 허리를 가로 지르는 길 양편으로는 각종 상점이 늘어서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먹거리, 의상, 사진, 기념품, 커피, ....등등. 그런데 골목을 이리저리 누벼도 주민들을 만날 수 없었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관광객이 다니도록 잘 포장해둔 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찍기 바쁘다. 아니 사진만 찍는다. 어린왕자의 조형물이 있는 곳엔 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상점 주인들 중에 이곳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은 없고 객만 있는 것 같아 뭔가 허전하고 적막한 분위기였다. 돌아와서 기억에 남는 것은 형형색색의 수많은 집. 그 형형색색의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몰두하는 관광객들. 그리고 적막한 마을 분위기가 전부다.

 

 [사진1]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특별한 경관

 

서울의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에서 흥인지문까지 넘는 도성길이 있다. 낙산도성길 순성길이다. 길이 편하고 경관이 특별해서 자주 넘는다. 그 순성길 정상에서 대학로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이화마을이 있다. 벽화마을로도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을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수시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심각한 사생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이 생겼다. 최근에 가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도 없고 밤낮도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심지어 주인 허락도 없이 여기저기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하고 오물을 버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소음은 스트레스 중에 가장 정신저으로 피해를 주는 스트레스다. 귀를 막고 생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마을도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에겐 더 많은 관광객이 오면 좋겠지만 편안한 쉼터로서의 집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겠다.

 

[사진2] 이화마을 주민의 호소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사는 집과 마을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주자의 행복이 더 중요하게 인식 되어야하고 방문객은 거주자의 삶의 질을 해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천 마을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을 어느정도 한정해 둠으로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고 소음이나 여러 불편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찾아가고 싶은 마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