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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께서 그대들을 예기치 못한 고통에 빠뜨리셨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지 마시오. 그것은 자업자득이니까요.

그대들은 느닷없이 또는 은밀히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재앙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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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묵직하고 어두운 목소리가 중부캠퍼스 B1 모임방에 낮게 깔리고 있다.
그리스 비극 걸작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헤르메스의 대사를 낭독하고 있는 중이다.
곧이어 프로메테우스가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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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존경스러운 어머니 대지여!

오오, 우리 모두를 비추도록 해를 굴려주는 하늘이여,

그대는 내가 얼마나 부당하게 고통당하고 있는지 보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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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낭독하는 이들은 50+중부캠퍼스 커뮤니티인 ‘햅번’의 회원들이다.

햅번은 영화와 연극을 통해 문화 활동을 하고 싶은 ‘인생학교 1기’ 졸업생들이 만든 커뮤니티이다. Have Fun의 발음이 햅번인데, 이는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이들은 함께 보고 싶은 영화와 함께 읽고 싶은 희곡을 선정한 뒤 ‘중부 50+인생학교’ 카페에 탑재하고 공유한다. 영화를 함께 감상하는 날은 이 영화를 추천한 사람이 진행자가 되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주제를 정하여 토론을 한다, 희곡을 읽는 날은 배역을 정한 뒤 자신이 맡은 배역의 대사에 감정을 실어 큰 소리로 낭독을 한다.

 

 

오늘은 그리스의 비극 중 하나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낭독하는 날이다.

 

 

그리스인은 합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조차 인간과 같은 모습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여겼다.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는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많이 이용되었다. 문학 분야에서는 초기에 서사시(敍事詩)가 유행하였다. 서사시는 역사적 사실이나 신화, 전설, 영웅의 사적 따위를 객관적으로 쓴 긴 시이다. 기원전 8세기경에 나온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구전되어 오던 트로이 전쟁의 영웅과 신들의 세계를 그리스 알파벳으로 기록한 최초의 작품이다.

 

기원전 5세기경에는 연극이 크게 발달하였고, 희극과 비극이 노천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연극을 신에게 바치는 제사라고 여기고, 극장을 많이 만들어 공연을 자주 하였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3편인데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7편, 소포클레스의 작품 7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19편이다.
희곡(戲曲)은 연극을 위해 작성된 대본(臺本)인데, 비극은 희극보다 운명적인 삶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어 사람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낸다. 비극은 주인공이 왕이든 신이든 상관없이 극히 개인적이며, 가족사(家族史)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스 비극에 쉽게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은 비극이 개인과 개인의 운명과 복수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절대 왕권과 신권(神權)에 도전했던 영웅들인데 이들도 개인과 가족사의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비극은 영웅들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슬픔과 아픔이 담긴 운명을 담고 있다. 즉 그리스 비극의 가장 큰 특징은 운명론적 비극이다.

 

 

햅번이 오늘 낭독하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의 하나인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도와 티탄 신족을 물리치고 올림포스 신족의 시대를 열게 해준 신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몰래 불을 주고 기술을 가르쳐주는 등 인간의 편을 들다 제우스의 미움을 받게 되어 카우카소스 산의 높은 암벽에 결박당하게 된다.
이때 암소로 변신한 이오가 그곳을 지나자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에게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제우스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오가 떠난 뒤 헤르메스가 나타나 제우스가 몰락하게 될 비밀을 말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끝까지 거절하다가 제우스가 일으킨 벼락으로 산산조각이 난 바위들과 함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햅번 회원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이 돌아올 때마다 배에 힘을 주고 감정이입까지 하면서 큰 소리로 낭독을 한다. 다른 회원들은 낭독자의 감정 선을 따라간다. 잔인하고 슬픈 대목이 나올 때는 미간을 좁히고 함께 무거운 분위기로 빠져든다. 지난 7월,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낭독할 때는 책 읽듯이 낭독을 하였는데 어느새 그때와 사뭇 다르다.
희곡을 읽을 때는 연극 전문가인 서하경 강사가 함께 하면서 도움을 주며 햅번 대표인 차은경씨는 “희곡 낭독을 하다보면 공감 능력이 생기고 소통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라면서 희곡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희곡을 낭독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희곡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접 경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발음도 교정되고요.

복식 호흡을 하게 되니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고 전신 운동도 됩니다.

 

 

 

 

햅번은 일상에서 비교적 접근성이 용이한 문화 활동인 영화와 연극을 매개로 하여

50+세대가 안고 있는 각종 관심사와 고민거리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는 삼삼오오 모여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번개 모임도 한다.

 

햅번은 무대 장치가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연극 상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고 있다.

또한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에게 목소리로 들려주는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온 50+세대들!

영화와 연극을 통해 문화를 함께 향유하면서,

한편으로 사회에도 기여하려는 햅번의 행복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에게 전염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