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시원해졌음을 느낄 때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지 시작했다. 너무 더워 여행을 떠나지 못해 우울했던 시간을 날려버리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들판과 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가야할 곳이 너무나 많다. 단풍을 찾아가는 여행객들 속에 파묻혀 보내기보다 한번쯤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여유롭게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평일에 가면 더욱 한가하겠지만 주말에 가도 한적한 장소를 소개하려고 한다.

 

 

가을이면 떠오르는 붉은색 그것

가을에는 붉은색의 단풍과 갈색의 억새와 갈대가 대표적인 색상이자 찾아가는 필수 장소이다. 우리나라 어느곳에 단풍이 없는 곳이 없지만 찾아가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단풍 구경뿐만 아니라 한적함을 더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려 한다.

 

 

1. 고창 선운산 질마재길

단풍으로 유명한 곳은 고창에서 지척인 정읍 내장산을 꼽는다. 차를 타고가도 줄서서 들어가야하는 어마어마한 곳이다. 하지만 선운산 질마재길은 주말에도 인적이 덜 붐빈다. 곱게 물든 단풍빛깔을 내뿜는대도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 선운산의 단풍은 11월 초에 찾아가면 최고의 빛깔을 만날 수 있다. 질마재길따라가는 선운산 단풍이 더욱 붉게 빛나는 이유는 도솔천에 떨어진 도토리에서 우려나오는 탄닌때문에 거울처럼 보여 요지경 단풍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도솔천따라 도솔암까지만 다녀와도 하루를 충분히 즐길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2. 포천 한탄강 주상절리길 (비둘기낭폭포-부소천교)

한탄강 주변은 대부분 겨울 또는 여름에 찾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한탄강의 독특한 풍경과 더불어 단풍이 빨리 찾아오는 10월 중순에 찾아가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한탄강 주변에 있는 포천시, 철원군 등에서 둘레길을 만들어 놓아 다른 지방의 하천길과 비교할 수 없는 용암길 풍경을 마주한다. 특히 부소천교부터 비둘기낭폭포까지 걷는 코스가 단풍 터널을 따라 걷는 길이라 상쾌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비둘기낭폭포 옆에 한탄강흔들다리가 생겨 볼거리가 늘어난 구간이기도 하다.

 

 

3. 서울 북악 하늘길 (feat. 팔각정)

단풍구경을 하기위해 꼭 지방에 있는 산으로 갈 필요는 없다. 도심 속에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제법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왕산과 북악산 하늘길을 따라가는 코스이다. 도심속 깊은 숲길도 체험할 수 있고, 단풍나무가 많아 유독 붉은빛을 많이 발하는 곳이다. 걷는 중간에 빠져나가기도 용이하고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다. 단, 북악산 하늘길 부암동을 지나쳤다면 무조건 끝까지 가야 한다. 하늘길 중간 팔각정은 쉼터이자 서울 중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얼룩덜룩 물든 북한산 자락에 얹혀있는 평창동 마을을 보는것도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다양한 집 모양새가 만든 한 폭에 그림이다.

 

 

 

억새 그리고 갈대가 아름다운 그곳

억새가 특별해 보이는 건 붉은 빛깔을 내세우는 가을에 아이보리빛으로 존재감을 뿜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색깔이였다면 묻혀서 보이지 않을테지만 상반된 색깔 때문에 눈에 잘 뜨인다. 게다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으면 물결치는 파도위를 걷는 느낌을 맛볼 수 있어 항상 찾아가는 장소이다.

 

 

4. 영화 속 그 장소, 양평 설매재 능선

‘관상‘ 그리고 최근에 ’물괴’라는 영화에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외떨어진 초가집이 보인다. 같은 집이자 양평 설매재라는 곳 근처 산속에 있는 세트장 초가집이다. 설매재 능선을 따라가다보면 억새 군락지가 나오고 그 가운데 점잖게 초가집이 서있다. 능선위까지 올라가기에 유명산도 편하게 갈 수 있는 능선길이다. 양평시내와 두물머리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장소이다 보니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다.

 

 

5. 억새 가득한 제주의 오름, 따라비오름과 용눈이오름

제주의 오름은 크게 편백 또는 삼나무로 에워싸인 오름과 민둥산처럼 보이지만 억새로 가득한 오름으로 나뉜다. 편백나무로 쌓인 오름은 사계절 색깔 변화가 없지만 억새로 쌓인 오름은 계절마다 색깔이 달리 보인다. 특히 10월 말에 가면 억새 가득한 옅은 갈색빛 오름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따라비오름과 용눈이 오름이다. 다랑쉬오름 옆에 작은 오름인 아끈다랑쉬오름은 오름올라가는 오솔길조차 억새에 가려있어 억새숲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곳이다. 이 가을에는 억새가득한 오름에 올라 제푸의 푸른바다를 내려다보는것도 멋진 경험이 된다.

 

 

 

6. 갯골이 만든 갈대숲길 -시흥 늠내길

해마다 가을이 되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매년 찾아가지만 갈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 시흥늠내길 중 갯골길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내륙 깊숙이 개펄이 존재하는 곳이 시흥시 갯골생태공원이며 여기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이 시흥늠내길이다. 이곳에는 억새도 많지만 대부분 갈대군락지 이다. 그래서 두 개의 색깔이 혼재하여 보인다. 전체를 조망하려면 가운데 서있는 통나무 전망대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서해바다 뿐만 아니라 송도신도시까지 보이는 이채로움 풍경을 보게 된다.

 

 

7. 산위에 하얀 물결 - 오서산 억새군락지

억새군락지로 유명한 산이 몇 군데 있다. 이중에 하나가 오서산인데 다른 산에 비해 여기를 선택한 이유는 억새군락지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다른 산에 비해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지만 오서산은 구불구불한 임도길이 정상까지이어져 있다. 하지만 올라가는 시간은 제법 길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야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보령군과 홍성군에서 각각 세운 정상 표시석이 존재한다. 원래 정상은 보령군에 있는 표시석인데 임도길끝에서 왼쪽으로 좀 걸어가야 한다. 반면에 오른쪽으로 돌아가 데크 전망대에 다다르면 홍성군에서 세운 표시석이 있고 이쪽이 가깝다. 그래서 이방향으로 많이 찾아오지만 억새군락지는 보령군 정상으로 가야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늦은 저녁 일몰 풍경을 보고 내려와도 괜찮은 곳이 여기이다.

 

 

 

도심 속 여행지 그곳

꼭 자연속에 들어가야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 속에서도 가을 느낌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의 도시에서도 가을을 만날 수 있지만 그 중에 몇 군데를 꼽으라고 하면 여기를 소개한다.

 

8. 성북동 와룡공원과 길상사

나름 잘 소문난 장소가 길상사이다.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배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 단풍나무가 많아 붉은 단풍을 내보이는 사찰이다. 늦은 여름에는 꽃무릇이 피어나기 때문에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찾아가도 최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모습에 위화감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길상사에서는 느낄 수 없고 아주 오래된 고택의 푸근함을 대신 느낄 수 있다. 작은 사찰이지만 둘러보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래서 길상사에서 천천히 성북동을 가로질러 내려가면서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길을 이어가면 좋은 곳이다.

 

 

9. 하천길이라고 무시하지마라. 나도 단풍깃든 길이야!

하천길은 밍밍하고 볼거리 별로 없는 곳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 그렇다. 아닌곳도 있지만 단풍처럼 가을을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반대로 안양천 뚝방길은 봄에는 벚꽃으로 하얀색 터널을 만들지만, 가을에는 벚나무의 잎이 단풍으로 변하여 붉은빛 터널길을 만든다. 생각만 조금만 바꿔도 내 주변에 좋은 곳이 꽤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울둘레길 안양천 구간은 가을에도 걷기에 좋지만 특히 구일역을 기준으로 서울방향의 오목교앞까지 또는 안양방향으로 금천구청역까지가 괜찮다. 따가운 햇빛을 피하며 걸을 수 있는 나름 시원하고 산책하듯 걷기 좋은 곳이 여기이다. 게다가 고척동 돔구장과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을 보는것도 작은 재미이다.

 

 

10. 그래도 여기는 빼놓을 수 없는 순천만생태습지

억새와 갈대숲을 만나는 장소중에 이곳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순천만생태습지’은 환경보호를 위해 국가에서 지정한 자연공원으로 더 이상 파괴적인 개발을 할 수 없는 장소이다. 너른 개펄위로 뒤덮인 억새와 갈대는 어느 곳보다 넓고 시선 끝까지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재대로 보려면 갈대숲을 가로질러 용산전망대에 올라서야 한다. 제법 걸어야 하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최고중에 최고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순천만 뿐만 아니라 갈대숲, 그리고 바다건너 들판까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을 만난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풍경이 비슷비슷하다고 하여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있다. 하지만 순천만은 꼭 전망대에 올라서야 비로소 노력의 댓가를 보상받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