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게 겁나지 않은 노년들을 <노년은 아름다워>에서 만났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대표인 저자 김영옥은 당당하게 나이 들어가는 여러 노년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의 관점 아래서 노년은 분명 추한 인간이다. 노년은 느리고, 둔하고, 더러는 나이를 앞세워 무레하다보니 어느덧 사회에는 노년 혐오 현상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노년이 아름답다니? 부제인 '새로운 미의 탄생'의 의미 또한 궁금해진다. 

 

저자는 '젊음이 미의 기준'이 되는 것에 반대한다.

 

“노년의 품은 젊은 사람의 품이 갖지 못한 지지와 위로, 칭찬의 힘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은 외부와 내부의 순환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노년이야말로 육체를 감싸는 것이 영혼임을 다시 환기하는 사람이다. 더 이상 지불 노동이나 혈연 의무에 복무할 필요가 없는, 성공을 위한 모든 동분서주에서도 물러난 노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저자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런 아름다운 노년을 만나보자. "모든 나이는 살아볼 만하더라" 현재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최현숙 씨의 말이다. 그녀는 노년의 생애 구술사를 쓰고 있으며, 이미 두 권이나 출간했다. 가정주부에서 레즈비언 성소수자 운동가로, 요양보호사이자 생애기록자로 거침없이 삶을 횡단해온 그녀의 삶은 두려움 없이 나이 드는 모습으로 건강하게 빛난다.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어요"라며 자서전을 쓰는 최영선 씨. 80에 가까운 나이의 그녀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소리 없이 번지는 웃음과 강한 자긍심을 분출한다. 그녀는 며느리를 보고 난 뒤 십계명을 작성하여 지켰다고 하는 쿨한 시어머니기도 하다. 다니던 직장을 퇴직 후에는 아들네에서 스스로 분가를 하여 각자의 삶을 존중하였다고 하니, 'B급 며느리' 같은 영화와 책이 나오는 요즘 시대에 신선한 분이다.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김담 씨이다.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전 재산을 아내에게 넘기고 졸혼하였다. '생계부양자여 안녕!'을 외치며 홀로의 자유를 위해 그리운 고향과 비슷한 상주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빈손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자유'가 주는 삶의 활력이 전해져 온다. 자의든 타의든 졸혼과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시대이다. 남은 나날을 어떻게 하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미 있게 잘 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김담 씨는 그런 사람이다. "무대 위에서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고 용을 쓰는 대신 아래로 내려와 관객이 되는 것.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한 템포 늦추는 것. 어지럽거나 언짢은 마음은 시간 아래 두고 곰삭히는 것." 그의 혜안이 담긴 방법이다. 생활을 간소화하고 마음을 비우면 철학자가 되는 것일까?

 

"내 나이?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지!"

밀양 할매들의 말이다. 여성, 특히 할머니가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10여 년간 길게 투쟁해왔다. 비록 결국 송전탑은 들어왔지만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우리 정말 많이 싸웠다. 잘 싸웠다. 밤낮도 없이…."라 말하며 싸웠기에 후회가 없는 그들이다. 긴 시간을 이어온 투쟁의 아픔을 울력의 힘으로 지탱하며 익어간 그들이기에 뭉클하다.
 

 

책에는 잘 익어가는 일본의 노년 몇 명도 소개하고 있다. 노년의 아름다움을 '자기답게 사는 모습'에서 찾는 군지 마유미 씨는 "나이 드는 일은 별로 두렵지 않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꽉 찬 인생을 산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생활협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아실현과 지역운동을 함께 실현하고 있다.

방송인 다지마 요코 씨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꿈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과 닮아 있어 반갑다. 그녀는 책도 쓰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노래도 부르면서 살다가 어느 날 "아, 날씨 좋네. 오늘 죽어야겠다." 그러면서 한 순간에 탁 죽는 거, 홀연히 사라지는 거란다. 멋있지 않은가?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판다>에 나오는 우그웨이 사부가 무수히 흩날리는 벚꽃 잎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나이 드는 것을 어쩌겠는가, 도도하게 맞는 수밖에!"

 

책 속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저자의 말대로 타자의 시선을 더 이상 자기 승인의 잣대로 삼지 않아도 될 자유, '자기만의 시간'에서 누리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시기가 바로 노년이 아닐까?

 

그렇다고 얼른 노년이 되기를 기다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도도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