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나: 그 때 울었어요? 선생님? 수진: 응. 조금 울었어.

혜나: 난 안 울었어요. 선생님. 그럴 땐 좋아하는 걸 생각하세요. 그러면 울다가도 안 울 수가 있어요.

수진: 혜나야. 혼자 다니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이 시간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서 안 돼.

혜나: 전 원래 혼자 다녀요. 다섯 살 때부터. 지금은 집에 갈 수 없어요.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 노트예요. 좋아하는 것들을 이렇게 써놓으면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어요. 냉장고처럼. 회전의자, 구부러진 비탈길, 고양이 눈 마주칠 때, 풍선이 점점 부풀어 오를 때. 카페 라떼. 저녁하늘의 구름, 강수진 선생님 처음 웃을 때.

 

이제 네가 엄마를 버리는 거야, 할 수 있겠니?

모든 것들과 제대로 만나는 데에는 저마다 시간이 따로 있다. 이른바 타이밍. 모두가 좋다고 한 목소리로 권하는 책도, 시도 내게로 올 때까지는 몇 십 년 넘게 걸릴 수 있고 끝내 빗겨갈 수도 있다. 만인을 울린 음악도 목소리도 내 귓전 한 번 당도하지 못할 수도, 사랑하는 이의 다정 가득한 마음도 때가 맞지 않으면 세상에 아예 없던 것으로 사라져간다. 그러니 인과 연이란 말이 있는 것일 테고 시절인연이란 말도 넘나들 것이다. <마더>가 그랬다. 방영되었는지도 몰랐던 드라마가 때를 맞춘 듯 쓱 들어온 것은 햇밤이 쏟아져 나오던 몇 주 전. 일면식도 없던 온라인 친구가 요즈음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휘청거리던 내게 밤 한 상자를 부쳐왔다. 이빨도 없고 눈도 없는 밤벌레를, 독도 없고 발도 없어 나를 해할 수 없는 작은 밤벌레가 터무니없이 무서워서 그냥 까먹고 삶아먹고 구워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밤들을 앞에 놓고 거실에 앉았다. 하룻밤만 지나도 생겨날지 모르니 어서 손질해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으니까. 목장갑을 끼고 앉아 수백 개의 밤을 까려면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자막 깔린 외국영화도 볼 수 없으니 남은 건 단 하나, 한국드라마가 제격이어서 다시보기를 틀어 현금결제 없이 볼 수 있는 것 중에 <마더>를 선택했다. 질질 짤 것 같은 <엄마>나 <어머니>가 아니어서 좋았고 쥐어짜는 모성 찬양이나 훈계가 아닌 것 같아 오케이. 무엇보다 ‘이제 네가 엄마를 버리는 거야’ ‘절대 엄마가 되지 않으려 했다’는 서늘하고 단호한 헤드카피가 타이밍 맞춰, 다가왔다. 나무도 불게 물들다 잎을 버리는 가을, 이별이 많은 날들이었다.

 

절대 엄마가 되지 않으려다 스스로 자신에게 혜나에게 엄마가 되어주는 수진.

 

너는 아주 많은 행운이 필요할 것 같구나.

아홉 살짜리 버림받은 아이와 서른여덟 살, 오래전에 버림받은 여자가 피의 흐름 없이 엄마와 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밤을 불리고 까고 삶고 졸이는 이박 삼일 동안 몰아보았다. 손목은 칼질에 시큰거리는데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밤 조림, 보늬 밤을 만들어 유리병에 넣을 때까지 16부작 <마더>의 혜나(허율)와 수진(이보영), 그리고 영신(이혜영)과 함께 보냈다. 어떻게 이렇게 기막힌 드라마가 생겨났던 걸까? 엄마가 되고 싶은 여자, 엄마가 되어 불행해진 여자, 엄마가 아닌 여자,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자, 그럼에도 엄마가 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여자들의 이야기 속에 그야말로 밤들처럼 졸여지는 시간이었다.

 

드라마 마더.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 여자들의 이야기

 

‘My Favorite Thing’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목록을 만들고 수첩에 적어놓는 것은 오래전부터 자주 했고 지금도 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들 속의 구절들, 노래가사들, 먹고픈 음식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약간 어리광 섞인 기록의 애잔함이라면 <마더>속 소녀 혜나의 좋아하는 것들 노트는 절박하고 필사적이다. 그 애는 살아 있는 기쁨을 기록하기보다 울지 않기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 그것들을 적는다. 등 뒤에 종량제 쓰레기 표지를 붙이는 같은 반 아이들,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죽는 거라고 협박하는 엄마의 동거남, 햄스터 한 마리를 들고 밤거리로 내쫓기다가 마침내 엄마에게 맞고 쓰레기봉투에 담겨 다른 쓰레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채 한파의 밤거리에 버려진 소녀가 적어가는 좋아하는 것들 목록은 참담한 현실에 비해 아주 사소하고 따뜻한 찰나의 목록이어서 더욱 기막히다. 밤 껍질 까는 손짓을 얼마나 자주 멈추게 되던지. 아홉 살 짧은 인생, 단 한 번도, 어떤 움직임도 다정한 눈길이나 긍정의 피드백을 받지 못한 혜나가 끊임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려고 도망치면서 쓰기를 계속하는 변하는 목록들은 또 얼마나 담백하고 처절한지. ‘입으면 남자아이처럼 보이는 옷, 나의 행운의 목걸이, 끈을 잡아당기면 완성되는 신기한 일회용 볶음밥, 종이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38살의 우리 엄마,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윤복이라는 이름, 강수진 엄마, 안녕.

 

그 많은 아버지는 모두 어디에 갔나.

아무리 제목이 <마더>라 해도 이 드라마엔 아버지가 없다. 아이들은 몹쓸 엄마, 자식을 버리는 엄마일지언정 그나마 있었다고 해도 아버지가 있는 자식은 없는데, 그나마 얼굴이라도 나온 아버지는 단 두 명. 미혼모인 혜나의 어린 엄마는 같이 아기를 만든 남자(아버지)가 있었으나 그는 갓 낳은 아이와 엄마에게 푼돈을 던지고 사라진다. 또 하나의 아버지는 곁에서 같이 살면서도 자기를 아버지라고 밝히지 않고 아저씨로 사는 영신(이혜영)의 매니저 재범뿐이다. 아버지가 되었던 남자들은 아내와 아이를 죽도록 패거나 떠나버리거나 아내의 손에 죽었다. 대타 아버지로 삼았던 남자들도 의붓자식을 학대하거나 죽여 버리는데 그들에게도 이미 아버지는 폭행자거나 학대자, 살인자였을 뿐 아버지는 되어주지 않았다. 엊그제도 얼마 전에도 전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패고 전 연인인 여자를 죽이고 일가족을 몰살한 전 남친 뉴스를 봤다. 살벌하고 끔찍한 이 모든 이야기들이 드라마가 아니라 모두 현실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실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자물쇠로 묶인 채 고아원에 버려졌던 수진과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혜나와 단 한 아이도 제 배로 낳진 않고도 자기 딸로 두 명이나 키운 영신 같은 사람이 드라마 속에 숨 쉬고 있어서 그나마 희망으로 견딜 만했다.

“엄마가 되는 건 중병을 앓는 것과 같아. 모든 사람이 다 이길 수는 없지만 넌 잘 할 거야.”

“나는 살면서 많은 역할을 했단다. 아무것도 몰랐을 땐 오필리아. 남자한테 배신당했을 땐 메디아. 오늘밤엔 그 중에서도.. 데메테르. 너무나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리는 여자. 오늘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아. 너한테 주었던 마음을 도로 가지고 가야겠다.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서 너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거든. 그래도 너에게 이 목걸이를 주마. 너는 행운이 아주 많이 필요한 것 같구나.”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긴 해도 어쩌면 위대한 영웅 같은 엄마, 그 여자, 영신.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

“안녕, 세상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재깍거리는 시계도, 잘 있어,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

 

드라마 <마더>의 압권이자 백미인 장면은 연극 <우리읍내>의 3막 마지막 장면에서 에밀 리가 하는 대사를 영신이 읊을 때다. 배우이자 연극배우 역할로 나오는 영신(이혜영)은 암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맏딸 수진(이보영)의 또 피 한 방울 안 섞인 딸 혜나(허율)에게 저 대목을 읽어달라고 청한다. 영신이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의 기척을 알아듣고 방으로 올라온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그 어린 혜나였던 것.

고아원에서 입양해 딸로 삼아 사랑하고 또 사랑한 수진의 생모를 찾아가 “당신이 내 딸 버린 여자야?” 벼락같이 소리치며 분노한 여자,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린 혜나 생모의 학대와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쓰러진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세 아이를 친딸로 받아들여 비로소 엄마가 되었던 여자, 영신은 곧 다가올 죽음의 시기와 방식을 스스로 선택했다. “천천히 돈 쓰면서 고통스럽게 죽는 것. 육 개월, 하고 싶은 것 하고 갑작스레 죽는 것.” 중에서 후자의 것으로. 정확하게 인사하고 잘 떠나는 것. “나는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인사해야 할 사람이 많아.”라며 혼자 작별하는 것.

 

손톤 와일더 극본 우리 읍내. 짧고 서늘한 우리 사는 이야기

 

<우리읍내>의 에밀리는 평범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하루아침에 산 자에서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선 젊은 망자 에밀리는 단 하루만,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골라 이승으로 가고자 한다. 그 때 옆 무덤 ‘이미 죽은 자’는 가만히 말해준다. 이승으로 가 볼 거라면 중요하지 않았던 날을 선택하라고. Then chose an unimportant day. the least important day. it will be important enough. (안 된다. 정 그러면 평범한 날을 골라라, 그래도 충분해)

살아 있던 날들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12세 생일을 골라 이승으로 돌아간 에밀리는 엄마 아빠 동생,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맞출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그 때, 그 순간 살아있던 동생이 얼마 후면 죽고 자신도 이미 죽고 없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채 순간을 그저 사는 사람들에게 에밀리는 안타깝게 인사하면서 저승, 자기 무덤으로 돌아오며 내레이터에게 묻는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무대감독은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한다. 성인이나 몇 명의 시인이나 알 수 있을까.

 

괜찮은 인생이었어, 후회 없어. <마더>의 진짜 주인공일 영신이 배우인 것과 마지막 세상과의 인사가 <우리 읍내>의 에밀리 대사인 것이 소름 돋을 만큼 앞뒤가 맞는 느낌이어서 <우리읍내>를 다시 읽었다. <우리읍내>의 시대 배경은 1901년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끊임없이 상연되고 영화에도 자주 언급되는 것은 스토리자체가 너무나 평범하고 변함없는 인간의 생과 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억의 인간이 모두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병들고 죽는 간략하고 반복적인 바로 그것.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올 한 해 유난히도 많은 이들이 아프고 죽었고 떠나갔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고,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고,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망하고 허무하고 슬픈 와중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죽은 자가 되어버린 에밀리의 마음으로, 또는 이승에 잠시 찾아온 에밀리처럼 나도 살아 있는 지금, 가장 평범한 하루에게 다시 못 올 작별처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을 잡으라거나, 카르페 디엠을 외치거나 지금, 여기를 살아라! 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도 내 귓등을 스쳐지나간다. 피곤한 눈을 붙인 딸들에게 붉게 물든 단풍나무 잎들에게, 너무 바빠서 단 하루도 내 줄 시간이 없다는 친구에게,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쯤 철새들이 길을 잃지 않고 북극성을 바라보며 떠났던 것처럼 아이슬란드에 무사히 당도해있을 혜나처럼 좋아하는 것 노트를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그 노트에 손톤 와일더 <우리읍내>속 구절들을 써넣는다. 1901년 <우리읍내>는 지금 충북 음성군 삼성면 내 고향일 수도, 노원 섬밭로 229번지여도 하나도 다름없이 일상을 살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끔찍하게 버려진 아이, 혜나. 좋아하는 것 노트를 쓴다.

 

“3년이 흘렀습니다. 네, 해가 천 번도 더 떴다가 졌죠. 저 산들도 세월에 깎이고 빗물에 쓸려서 조금 낮아졌습니다. 3년 전엔 있지도 않았던 애들이 제법 똑똑한 말을 하게 됐고, 펄펄 젊다고 믿던 사람들도 숨이 차서 계단을 못 뛰어오르게 됐죠. 천일동안 무슨 일인들 안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자연이 하는 일이 또 있죠. 누구나 임종을 맞죠.”

 

“그 동안 9년이 흘러서, 1913년 여름입니다. 우리 읍내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자, 여긴 우리 읍내에서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산등성이라 바람이 세지만, 위로는 끝없는 하늘에, 수많은 구름에, 시시각각 해와 달과 별이 빛나는 곳이죠. 네, 여긴 아름다운 곳입니다. 월계수에 라일락이 한창이군요. 여기 오래된 무덤들이 있습니다. 공동묘집니다. 네, 수많은 슬픔이 서린 곳입니다. 이 위에다 혈육을 모시며 슬픔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상상이 되시죠? 하지만 해가 쪼이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아름다운 곳 아닙니까? 다행이죠, 언젠간 우리도 와야 하니까요. 죽은 이들은 우리 산 사람들을 별로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차츰 이승과 연을 끊고... 야망도... 기쁨도... 고통도... 사랑도 다 잊고, 떨어져 나갑니다. 어머니와 딸... 남편과 아내... 원수와 원수... 돈과 재물... 이렇듯 중요하던 것들도 여기선 점점 빛을 잃거든요. 그러다 모든 기억이 없어지면, 자기가 누군지나 알겠습니까?

 

“우리 읍내에선 거의 다 잠이 들었습니다. 몇 군데만 불이 켜져 있군요. 기차역에선 자그마한 호킨스 씨가 올바니 행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고, 마차 세놓는 집에선 몇몇이 앉아 두런대고 있습니다. 네, 날이 갰습니다. 하늘엔 별이 총총합니다. 옛날부터 저 별들은 하늘을 이리저리 오가고 있습니다. 학자들도 아직 정확히 규명은 못했습니다만, 저 별들엔 생물이 안 산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저 돌덩어리거나... 아니면 불덩어리라거나. 하지만 이 지구만은 뭔가를 해보려고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게 너무 과해서 열여섯 시간이 지나면 꼭 한 번 누워서 쉬어야 하고 말입니다. (시계의 태엽을 감는다)

음, 벌써 열한 시가 됐습니다. 자, 여러분도 이제 쉬셔야죠. 안녕히들 돌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