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직장동료를 빼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경계 허물기, 인생 돌아보기, 감정 다루기, 목표 세우기를 통해 
50+세대로서의 ‘나’를 새롭게 탐색하고 
풍요롭고 가치 있는 오십 이후의 삶을 모색해 봅니다. 

 

 

박선화 작가와 함께 진짜 '나'를 탐색하러 가는 날, 서부캠퍼스가 자리 잡은 혁신파크의 뜰은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담고 있었다. 풍성했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빈 가지가 되어가는 나무들을 보며 '나'를 만나러 가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2명, 여자 5명이 서로 서먹해하며 둥글게 앉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어느 정도 열어놓을 수 있을까? 순간 어색하고 걱정이 앞선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집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좋은 강의는 많지만 모두 남의 경험입니다. 정작 자기감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는 적습니다. 오늘은 내 마음의 방을 어떻게 청소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자기를 들여다보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추구하는 마음 탐구자 박선화 강사님의 말씀이다. 심리탐구서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의 저자이다.  



▲ 마음 탐구자 박선화 강사. 지난 8월 23일, 서부캠퍼스 강당에서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 출간기념 북 토크를 가진 바 있다.


“아내에게 떠밀려서 신청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러한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외부적인 상황에 쓸려 살다가 내가 누군지, 앞으로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참석한 이유는 제 각각이다. 그러나 모두 삶에 대해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나타내는 별칭을 지어 보라는 요청에 '똑순이', '외골수 고집', '영웅', '쌈마이', '달려야 하니', '오소리 아줌마' 등등 … 참가자들의 별칭을 보니 성격이나 삶의 지향점을 얼핏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나의 별칭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실수를 줄이고 '지금'에 몰입하고자 내가 애용하는 별칭이다. 관심을 끌었던 별칭은 자신의 삶에 영웅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묻어있는 '영웅'이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외골수 고집'에게는 미소가 지어졌다. 서로의 별칭 소개만으로도 벌써 친해진 느낌이다.

 

'나의 인생 곡선 그리기'를 해 보며,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남편의 건강 악화로 불안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았을 때의 환희, 요즈음 누리는 일상의 기쁨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힘든 시절의 다리를 잘 건너온 스스로를 토닥거리고 별일 없는 하루에 감사한다.

 

프로그램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었다. 나의 경험을 꺼내가며 조언하려는 습관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동안 정작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서도 '내 이야기만 했구나, 듣는 사람이 외로웠겠구나 …."싶어 반성이 되었다.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아름 숙제를 안고 온 듯하다.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처음에 가진 긴장과 염려는 어느새 밀려갔다. 서로를 조금 알아가고 나를 들여다보는 동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밥 한 끼라도 함께 먹으며 하루 종일 진행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습니다. 남자들만 많은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알지 못했던 여자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았습니다. 또 힘들면 서도 괜찮다며

지내온 자신을 발견하고 솔직하게 접근해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내 생각, 내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의 감정을 살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람 한 명을 제대로 아는 것이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는 말에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상처와 내면까지 속이고 살아왔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확인했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포장을 벗기고 울음을 터뜨리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던 한 참가자는 자신의 이런 발견과 변화에 대해 놀라워했다. 낯선 공간이 가져다준 기적이다. 자기 이야기를 활활 풀어놓자는 '활활 토크'다운 순간이다.

 

강사님의 당부가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젊은 세대와 점점 세대차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소통의 어려움으로 점점 외로워지기 쉽지요. 그러므로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 사람에게 조언하기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괜찮은 사람인지, 인정하고

자신을 닦아나가면서 다른 세대와 소통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을 개방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소통의 배를 타고 새로이 '나', '친구', '다른 세대'와 만나고 싶다. 인생 후반이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온 캠퍼스를 걸어 나오며 든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자신 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 <보다> 중에서. 김영하. 문학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