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몇 해 전 광화문의 한 건물 글판에 걸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라는 글귀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덕분에 “풀꽃”은 지난 25년간 걸린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늘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힘든 마음을 살포시 안아주는 시들을 써온 나태주 시인.

그가 50+남부캠퍼스 북적북적 프로젝트에 강연자로 나선다며 행사 취재를 의뢰하는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쾌재를 부르며 남부캠퍼스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언덕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남부캠퍼스와 뒷산의 과수원이 정답게 나를 맞았다.

이번엔 왠지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과 설렘이 있었다.

 

 

50+남부캠퍼스가 ‘50+의 꿈, 책에서 찾다’라는 모토로 2018년 9월부터 시작한 북적북적 프로젝트는

11월 28일 마지막 행사로 “시와 사람이 있는 특별한 시간”을 주제로 제1부 나태주 시인의 강연,

남부캠퍼스 원 북(one book)으로 선정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로 진행된 따뜻한 북톡톡,

제2부, 태원준 여행작가와 ‘함께하는 여행의 행복’순으로 진행되었다.

 

나태주, 어린이 같은 천진함으로 세상을 노래하다

 

첫 번째 순서로 ‘시를 읽는 행복: 꽃을 보듯 시를 본다’는 강연이 열린 4층 강당은 나태주 시인의 인기를 반영하듯,

시작 전부터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등장한 나태주 시인,

아담한 체구, 순진무구한 표정이 마치 동자승 같은 느낌이었다.

시인이 저렇게 순수해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시를 쓰는구나 하는 느낌이 한순간에 와 닿았다.

강의는 시인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50대에 장학사,

교감을 거치면서 어떻게 하면 교장이 될까 고민하며 험악한 시기를 보냈는데

여기 오신 분들은 벌써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것 같아 부럽다는 말과 함께

지금부터 인생을 더불어 나누며 의미 있게 살라고 강조했다.

 

 

시인이 말하는 세 가지 ‘몰입’, ‘소통’, ‘죽음을 기억하라’

 

 

시인은 ‘몰입’, ‘소통’, ‘죽음을 기억하라’는 세 가지 핵심단어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이 바로 ‘몰입’이더라”며

공부를 못하던 시인의 아들이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하더니

새벽 공부에서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된 뒤로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 사업, 예술적 성공에는 몰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소통.

시인은 세상과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얼마나 잘 아는지가 중요하다며 내 특성, 내 장점, 내 가족 등 나와 내 주변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오늘은 바로 “어제 죽은 자가 살고 싶었던 내일”

에머슨이 말했던 “내 생애 남은 날들 중 첫날”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오늘 생애 첫날을 맞은 우리는 ‘새사람’으로 빛나게 살자고 제안했다.

 

 

풀꽃, 한류바람을 타고 전 세계로

 

시인은 10년 전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신문도 보지 않고 세상일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한다.

자신은 자동차도 없이 값어치로 따지면 비록 얼마 안 되는 집에서 살고 있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피곤할 때 자도 되고 지하철도 공짜이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는 말로 소박함을 드러낸다.

조금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행복의 척도를 물질에 두지 않는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기에

시인이 그처럼 천진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리라.

 

풀꽃의 인기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 몽골 등 세계 여러 나라에 팬이 있다는 시인.

말년에 시 한 편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젊었을 때는 나 혼자 잘 가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더불어 같이 잘 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모로코에 갔을 때 풀꽃을 좋아해 한국어를 배운다는 처녀에게

“풀꽃”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첫 두 행은 슬펐지만

‘너도 그렇다’라는 구절에서는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받고 싶은 것이 바로 관심과 인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것을 일깨우기에 그 짧은 시가 교과서에도 실리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닐까?

 

 

따뜻한 말과 글, 관계의 온도를 높이다

 

따뜻한 북톡(Talk)은 사전,

현장에서 신청한 스무 명의 참가자가 한국독서路연구소 서미경 소장의 진행으로

<언어의 온도>에 나온 구절들을 가지고 말과 글,

그리고 관계의 온도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나누었다.

자신이 뽑은 카드에 적힌 단어로 자기를 소개하면서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그 이유를 설명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옆에서 지켜보기보다 직접 참가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담당자의 권유에 따라 나도 참가자로 함께했다.

자신이 고른 문장을 소개하는 시간에 한 참가는 아버지가 딸에게 건넨

아비다. 잘 지내? 한 번 걸어봤다….”라는 문장을 소개하며 오열했다.

작년 1월 가족 누구에게도 “나는 가노라.”

단 한 마디도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나 오열했는데

그 글이 마치 아버지가 자신에게 건네신 말씀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글이란 이렇게 슬픔에도 젖게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환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도 아닌 그녀, 희수(가명)

 

누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 순서에서 한 참가자는 “희수야”라고 적었다.

그 이름을 보면서 순간 가슴뭉클했다.

나는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적었나보다 추측했다.

그런데 발표시간에 보니 젊은 부부 참가자 중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적은 것이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로 사는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는 속 깊은 남편의 이야기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비구니 참가자는

“그동안 수행자로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살다가, 몇 해 전 살던 절을 잃고 상처받고 힘들게 지냈는데

오늘 ‘공유와 소통의 자리에 함께하며 큰 힘을 얻게 되었다며 50+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또 한 참가자는 무슨 일에나 “왜 그래?”라며 이유를 묻곤 했는데

이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울컥’ 감정이 복받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글을 매개로 넓고 깊게 소통했다.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며 때론 위로를 건네고 때론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서로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돼.”

 

제 2부는 “함께하는 여행의 행복: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의 태원준 작가의 이야기였다.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잇달아 여의고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혼란에 빠진 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해 엄마에게 웃음을 되찾아드리고자 떠난 해외여행,

마다하는 엄마를 간신히 설득해 한 달 계획으로 떠난 여행은 525일 70여개국, 200개 도시를 도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식당을 운영하던 엄마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일에서 벗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에 적응한다.

 

작가는 처음엔 힘겨움에 여행중단을 호소하던 엄마가 중국여행 33일째

리장의 찻집에서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돼.”라고 한 말씀에

엄마를 모시고 기나긴 여행을 할 마음을 먹었다고 고백한다.

 

처음엔 자신이 엄마를 모시고 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반자가 되었고 유럽에서는 엄마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한다.

1차 때는 넉넉하지 않은 경비 탓에 게스트하우스처럼 싼 숙소, 배나 저가항공처럼 저렴한 운송수단을 이용하며

중국에서 포르투갈의 대서양 연안 호까곶까지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출간하고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엄마가 오히려 베테랑 여행자로 여행을 즐겼다 한다.

태 작가 자신은 강연과 저술 등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지인들과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용기를 내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용기라고 답하는 작가는

비록 실패해도 그 실패가 다음 여행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혹시 부모님과 여행을 계획하는 자식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물으니

“무조건 부모님께 맞추”라고 말한다.

“부모님이 가고 싶은 곳엘 가고 부모님이 원치 않으면 무조건 멈추고 절대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부모님과 여행하면서 자식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자기 위주의 일정을 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식처럼 젊지도, 활력이 넘치지도 않은 우리 부모님. 그분들은 결국 우리의 미래다.

 

 

오늘 행사를 끝으로 북적북적 프로젝트는 3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젊은 어른,

인생 2막을 준비하는 50+세대가 책과 가까워지고 책 속에서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번 행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