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꿈은 좀 황당하긴 해도 그 꿈으로 인해 끊임없이 그 꿈을 향해 인생의 항로를 정하기도 하고 꿈으로 인해 인생행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우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환상적인 캐릭터를 가진 어떤 인물의 영향을 받아 거창한 꿈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원 건축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나는 꿈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꿈인지 소망인지는 구별이 잘 안가지만 나에게도 꿈이 있긴 했다. 건축을 빨리 때려치우는 것. 더 이상 건축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빨리 그렇게 하고 싶은 꿈. 건축주, 공무원, 민원인, 시공자들 중에 일부가 건축을 때려치우고 싶은 내 꿈을 되도록 빨리 실행에 옮기라고 자극하곤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평생 직업을 훌쩍 떠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실현 불가능한 꿈을 안고 살다가 내가 50세 되던 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놀라운 꿈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존 고다드. 어른들이 삶에서 아쉽고 후회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15세 때 듣고 127가지의 꿈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 꿈 리스트 중에는 에베레스트 등정도 있고, 남극, 북극 탐험, 비행기 조종술 배우기 해저세계 탐험하기도 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꿈 127가지를 47세에 다 이루는 이야기였다. 초등학생에게 이야기해 주면 딱 좋을 이야기를 나는 50세에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나머지 나도 당장 꿈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내 처지에 무리하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꿈 리스트를 만들고 무조건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나는 매년 한 가지씩 꿈을 정하고 지금까지 그 꿈을 이루고 있다. 올해 나는 회갑을 맞았다. 50세에 시작해서 열 가지를 이루었다. 개략 그 리스트를 공개하면 상담사자격증 취득해서 봉사하기, 기타배우기, 목 조각 배우기, 강의하기, 책 내기 등등이다. 그 중에는 한 해에 50명 새로 사귀기도 있었다. 그냥 명함만 주고받는 게 아니고 최소한 만나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해에는 여기저기 모임에 다녔고 커뮤니티 활동도 많이 했다. 연말에 명함을 정리해보니 새로 사귄 사람들이 60명도 넘었다. 꿈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내 꿈은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거창한 꿈이 하나 있었다. 그 꿈은 40여 년 전 대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과에 들어가서 만든 첫 작품이 ‘미래 내가 살고 싶은 집’이었다.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단독주택이었다. 바람개비 모양이어서 거실과 주방 식당은 가운데에 있고 네 개의 날개에는 침실과 서재를 배치했다. 방마다 분위기가 다른 개별 정원이 있고 전망도 다 다른 멋진 집이다. 당시 내가 활동하던 건축과 동아리에서 ‘미래 내가 살 집’을 설계하고 그것을 종각역에서 전시도 했었다. 그 때 설계도 사진을 보면 지금 지어도 손색이 없는 멋진 집이다. 다만 아직 그 정도 집을 지을 만큼 경제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일 년 간 건축과 새내기들에게 건축 기초제도 강의를 했다. 캐드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손으로 작도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그리 신나는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구상하는 것을 손으로 쓱쓱 그려내야 한다는 내 철학에 학생들이 잘 따라주었다. 학기말 시간에 ‘미래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구상해 보도록 했다. 어느 지역, 어떤 환경에서 살고 싶은지,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나 가족 구성은 어떻게 희망하는지, 그리고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스케치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앞에 나가서 동기들에게 각자 자기가 꿈꾸는 미래 살고 싶은 집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건축을 막 시작한 새내기들에게 미래의 꿈을 그려보고 그것을 동기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오래토록 기억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앞으로 건축을 하면서 이리저리 상처받고 일과 사람에 치이고 하면서 꿈을 잊고 살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학창시절을 떠올리다가 ‘미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 집이 다시 생각나면 다시 꿈을 되살리고 그것을 꼭 실현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가족구성에서 혼자 살겠다고 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구체적으로 몇 평짜리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살겠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조금 큰 원룸에서 조용히 살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타인과 교류하면서 사는 것 보다 독립적이고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살겠다는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생각되더라도 좀 거창하고 멋진 집을 기대했던 내 꿈이 무너졌다.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휴식의 공간’이라고 답했다. 집의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지만 학생들은 그나마 집의 본질에 대해 ‘휴식’이라는 단어로 답한 것이 위안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휴식의 공간인가. 휴식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에서 우리는 진정한 휴식을 얻고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작은 공간 하나를 갖기 위해 평생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