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공자맨’신후식 어르신

- 천리마택배 현장에서 만난 사람

 

 

모사공과 사사경(貌思恭 事思敬)

신후식 어르신은 천리마 택배의 '야전 사령관'이다. 아니 그런 계급적인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르신은 천리마 택배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수평적 통로이다. 모든 택배 주문은 그의 책상전화를 통해 들어오고 모든 택배 지시서는 그의 손에 의해 작성된다. 주문 전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려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대에 집중된다. 20명의 택배원으로는 순환에 당연히 '병목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해법은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만큼 어렵다. 그래도 어르신은 한 건도 포기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막힌 체증을 풀어간다. 경험에서 나온 감으로 급한 물건과 덜 급한 물건을 나누고 같은 방향으로 물품과 택배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동대문 일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옷가게와 신발가게 밀집 지역이다. 물동량이 많으므로 그를 처리하는 택배 회사들도 많다. 자연히 경쟁이 심하다. 한번 주문을 놓치면 자칫 오랫동안 거래처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주문에 신속하고 신뢰감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간간히 걸려오는 고객 불만 사항에 친절하게 응대하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순발력과 임기응변의 재치도 필요하다.

 

그러자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어르신은 이백 통 가까운 전화와 씨름을 해야 한다. 웬만한 젊은 '감성노동자'의 업무량을 넘어선다. 그래도 어르신은 거래처에 공손하고 택배원들에게 자상하다. 신입 택배원들에게는 택배 지시를 내릴 때마다 지하철 환승역과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출구(이 두 가지는 지하철 택배에서 가장 중요하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반복해 준다. 거래처의 특성도 덧붙여준다.

 

공자는 덕을 닦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자세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를 구사(九思)라고 하는데 신후식 어르신에게는 적어도 두 가지는 확고하게 체질화 되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모사공”(공손한 몸가짐)과 “사사경”(일에 대한 공경)이다.

 

 

항심(恒心)

신후식 어르신은 출근 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마다 아내와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오른다. 태풍이나 호우경보 같은 기상특보가 내려지지 않는 한 1시간 30분 정도의 등산을 거르는 일이 없다. 20년 가까이 해온 일과라고 한다. 일터에서 그렇듯 가정에서도 한결 같은 그의 마음과 자세를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기자는 어르신의 이런 선비적 태도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르신의 부친은 평북 영변이 고향으로 해방 후 월남하셨다. 일본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였으면서도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에서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모색하지 않고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에 평생을 매진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외진 경상북도 풍기에서 세태와 타협하지 않고 고지식할 정도로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항심”은 '변함없이 일관된 마음이며 자주적인 자세'를 말한다. 공자는 "항상(恒常)의 마음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원(당시에는 천역)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무슨 일을 하건 작심삼일을 벗어나지 못한 기자에게 신후식 어르신은 항심의 본보기가 된다.

 

1975년 고향이 풍기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한 신후식 어르신은 1979년 죽마고우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다. 만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빠르게 진도가(?) 나간 것이다. 직장 생활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꼭 1004(천사)만원이 모아지면 '천사' 같은 아내에게 송금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보고 왔다며 기자에게도 한번 관람하기를 권했다. 아내에 대한 어르신의 마음도 항심이다.

 

   

 

곡굉지락(曲肱之樂)

어르신은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지금은 모두 출가를 하여 요즈음엔 손주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특별히 강조한 덕목이 있냐고 묻자

곧바로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게 살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라."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르신다운 시원스런 가르침이다. 곡굉은 '팔을 굽힌다', 즉 '팔벼개'를 의미한다. "곡굉지락"은 ‘헛된 꿈을 꾸지 않고 도리에 맞게 생활하면 팔을 베개 삼아 살 만큼 가난해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공자의 말이다.

 

신후식 어르신은 어쩔 수 없이 천리마택배의 고리타분하지 않은 '바른생활 공자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