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게 더 많이 떠오른다. 아마도 ‘점철되어온 괴로움의 역사’가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작아도 한참 작은 국가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 문화 권력’을 지척에 두고도 예로부터 아주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온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문화적 패배주의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이 많다. 1887년 우리의 경복궁(景福宮)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건청궁(乾淸宮)에서 전깃불[電球]이 동양 최초로 어두운 밤을 밝혔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앞서 전기를 사용한 것이다. 1879년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전구를 발명하고 고작 8년 만의 일이니 놀라운 역사의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에디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오!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전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 실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처럼 현대 첨단 과학의 시발점이기도 한 건청궁은 바로 일본이 제국의 군병(軍兵)을 동원해 명성황후(明成皇后)를 무도하게 살해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 건축 문화를 대표하는 경복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많은 이가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을 모델로 지었다고 믿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경복궁을 건립한 것은 1395년 9월 29일(태조 4년)이다. 반면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은 1420년에 건축했으니 정확하게 사반세기 앞선 시점이다. 아울러 623년 전 광화문(光化門) 앞에 조성한 육조(六曹) 거리의 폭이 그대로 오늘의 광화문 거리로 이어졌다는 사실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 ‘넉넉한’ 공간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눈높이가 새삼 존경스럽다. 이런 자랑스러운 유산을 외면하고 ‘문화적 패배주의의 덫’에 갇혀 있다는 건 또 다른 사대주의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 이성낙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