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반야사 둘레길

산골짝 사이로 강물이 흐른다. 강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선율처럼 부드럽다. 오솔길 위에 곱살한 낙엽들 폭신히 얹혀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숲엔 화염이 너울거렸으리라. 붉디붉은 단풍이 산을 태우고 숲을 살랐으리라. 그즈음,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에 어린 건 홍조(紅潮) 아니면 황홀한 신열이었을 테지.

 

 

강가엔 절이 있어 풍경에 성(聖)을 입힌다. 여기 에서 부처에 이르는 길이 가까운가? 반야사(般 若寺)다. 항상 새벽처럼 깨어 있으라! 반야의 지 혜를 길어 올려라! 불가의 전갈은 친절하다. 그 러나 내 안에 뒤엉킨 무지몽매는 진흙처럼 뻑뻑 해 깨어날 기색이 없다. 진흙을 움켜쥐고서도 꽃을 피워 올리는 연(蓮)의 뉴스는, 그저 잠시 잠깐 귓전을 스쳐갈 뿐이다. 하릴없이 저무는 가을이, 덧없이 지는 잎들이 애잔해 마음만 마 냥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뒤척인다. 법당 뜰에 선 배롱나무는 오백 살 나이를 자셨 다. 어쩌면 반야사의 최고참 선승에 속할 이 나 무는 이미 일체의 잎을 떨군 알몸이다. 오백 년 을 살았으니 오백 번을 옷 벗었겠지. 오백 차례 의 늦가을마다 서둘러 군더더기 털어내듯 훌훌 잎을 떨구었을 터이다. 분연한 정진의 화신이 라 해야 하나? 속진을 세속을 후련히 털어버린 성자처럼 개결한 모습이다. 허영을 말끔히 벗 은 뒤 드디어 본질만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자 태이지 않은가.

 


벗이여! 삶이 기막혀 홀로 외로운 그대여! 반야사에 가거들랑 배롱나무와 눈 맞출 일이다. 버 리고 또 버려 가뿐해지는 무욕의 이치를 선생으 로 삼아볼 요량이라도 해볼 일이다. 싱긋, 노거 수에게 윙크라도 하며 억지로 붙잡아 낑낑거렸 던 마지막 사랑마저 놓아버릴 일이다. 산의 이름은 백화산, 강 이름은 구수천(일명 석 천). 강과 산과 절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반야 사 둘레길은 근래에 조성되었다. 급작스레 인 기를 누리는, 일테면 둘레길의 신예다. 여보게! 우리 반야사 둘레길이나 걸어보세! 거기가 엄 청 좋다는 것이여! 그리 선창하며 찾아드는 사람이 많다.

 

숲속 나뭇잎들은 거의 누렇게 말랐다. 찰랑이 며 쏟아지는 햇살의 조명에도 아랑곳없이 핼쑥 한 산색이 마냥 스산하다. 여전히 붉은 빛을 머 금은 나무들도 있지만, 부질없다. 이수일의 바 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심순애처럼, 서둘러 떠나는 가을을 애써 잡 아두려 하지만, 이미 홍염의 한때는 저물었다. 오솔길 길섶에 뒹구는 돌들을 주워 모아 자그만 돌탑을 쌓는다. 돌 하나에 희망을 담고, 돌 둘에 용서를 쓰고, 돌 셋에 슬픔을 얹고, 돌 넷엔 슬픔 뒤 에도 남는 한 점의 기쁨을 기입하며….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돌탑이 있다. 기원하거나 기도하지 않고서 견딜 수 있는 삶이 있던가. 형체 없는 게 마음이지만, 돌탑을 쌓은 이들의 마음이 숲속에 서성거리는 것만 같다.

 

 

숲길에 정적이 고인다. 떨어진 낙엽을 보듬으며, 비처럼 눈물처럼 떨어지 는 마른 잎들을 껴안으며, 늦가을 오솔길은 묵은 시간처럼 고요하다. 문 득 일렁이는 바람의 기척인가. 다시금, 간신히 나무의 몸에 달려 있던 잎 사귀들이 흩날려 내린다. 조락의 연속이다. 잎은 입이 없으니 지면서도 유언이 없다. 눈이 없어 눈물이 없고, 여한이 없으니 부음을 전갈할 일이 없다. 떠나면서 티를 내는 건 어쩌면 사람뿐이다. 시드는 단풍 빛은 어디로 가나. 떨어진 잎들은 어디로 가나. 차가운 숲속 맨땅이 종착역일 리 없다. 일일호시일(日日好是日)이라. 어쨌거나 절정 의 날은 오늘 바로 이 순간이다. 조락조차 괜찮으니 애도하지 마소! 낙엽 이 그리 말하는 걸 늦가을의 숲에서 깨닫는다. 질 것들 지고, 떠날 것들 떠 나는 오늘도 길일(吉日)인가?

 

탐방 Tip

반야사 둘레길 총연장은 7km. 경부고속도로 황간IC를 벗어나 10분을 달리면 반야사 주차장에 닿는다. 반야사, 망경대 문수전, 임천석대, 옥화서원 등 볼 만한게 많다. 충북 영동군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라 꼽는 이가 많은 숲길이다.

 

박원식 소설가 사진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