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쯤 한 공중파방송의 TV 시리즈 중 <맥가이버>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다용도 칼 한 자루와 주위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며 첩보활동을 펼치는 주인공의 활약상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남아있다. 무엇이든 척척 잘 고치는 사람을 가리켜 맥가이버라 하는 이유다.

 

깜박이던 전등이 꺼졌거나 벽에 붙은 콘센트에 가전제품을 연결해도 작동이 되지 않을 때, 창문 방충망이 떨어져 나갔을 때,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샐 때 등 생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하곤 한다. 고장 난 부분의 자재를 사다가 직접 고치거나 수리 업체를 부르면 되겠지만 이도저도 여의치 않은 독거노인들이나 작은 비용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취약계층에게는 고장으로 인한 생활 속 불편함은 난감한 일이다. 이럴 때 뭐든 척척 고칠 수 있는 TV 속 맥가이버 같은 누군가가 고장 난 것들을 말끔히 고쳐준다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동안 은평구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일러 수리, 전등 교체, 뽁뽁이 단열 시공, 싱크대 수리 등 생활 속에서 오는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동네 맥가이버> 사업이 시작됐다. <우리동네 맥가이버>는 50+세대들로 구성된 전기, 도배, 목공, 단열 시공 전문가들이 취약세대를 직접 방문해, 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서울시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 중 하나였다. 작년의 성공적인 활동에 이어 올해도 엄선된 37명의 <우리동네 맥가이버>가 은평구와 도봉구, 서대문구와 관악구 등 4개 자치구에서 7월부터 활동 중이다. 이들은 사회공헌 활동가로서 필요한 소양교육(17시간)과 주거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교육(30시간)을 받고 2~3명이 한 팀을 이뤄 4개 자치구의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지난 17일, 도봉구 방학2동 주민센터 입구엔 <우리동네 맥가이버>라 쓰인 파란조끼를 입은 활동가 3명이 LED 전등과 공구들이 가득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막 활동을 나가려하고 있었다. 도봉구 방학2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동네 맥가이버> 오여주, 정규영, 김용재 활동가들이었다. 수리 요청이 온 취약계층 가구에게 필요한 재료들을 활동 시작 전에 인근 판매처에서 모두 구매해 양 손에 가득 든 상태였다.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은 고장이 나도 수리출장비용이 몇 만원씩 하니 사람 부르기가 어렵죠. 좀 불편해도 그냥 사는 분들이 많아요. 동주민센터 복지팀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분들이나 동네 사정에 밝은 마을지기를 통해 소개 받은 분들에게 불편하거나 고장 난 곳은 없는지 하루에 약 20~30집 정도 전화를 해요. 동네를 지나다니다가도 노인들을 만나면 홍보 전단지를 꺼내 거리 홍보도 합니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대상자를 섭외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을 찾아가요.”

우리동네 맥가이버 오여주씨는 수리 재료들을 챙기며 활동 대상자들을 어떻게 섭외해 찾아가는지 설명했다.

 

 

“끝까지 해결해야 그게 맥가이버지”

 

첫 번째로 <우리동네 맥가이버>를 요청한 집에서는 110V 콘센트를 220V 콘센트로 모두 교체하고 흐릿한 형광등을 밝은 LED전등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만지는 일이라 차단기를 몇 번에 걸쳐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한 후 작업이 마무리 됐다.

오래된 주택가 밀집지역이라 주소만 가지고 찾기 쉽지 않을 땐 길바닥에 지도를 펴 놓고 재차 확인 후 찾아가거나 의뢰인과 통화도 한다. 장소를 옮겨가며 활동을 해야 하니 찾아가며 걷는 거리도 만만치 않다. 무더운 여름엔 비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번 여름에 비가 많이 온 탓에 습해서인지, 집이 오래돼서 인지 두 번째 집 역시 콘센트가 말썽이었다. 안방과 주방 사이 벽에 부착된 콘센트가 벽 안쪽에서 합선이 돼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한다. <우리동네 맥가이버>들은 망가진 부분을 떼어내고 새 부품을 넣은 후 안방과 주방의 전선을 따로따로 찾아내서 연결했다. 차단기가 내려진 어두운 실내인지라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전선을 찾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던 것은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어려워도 마무리해야죠. 포기는 잘 안 해요. 서부캠퍼스 맥가이버의 자존심이 있지...... 이 활동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먼저 일했던 사람들이 맥가이버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는 없잖아요. 활동을 마치는 날까지는 최선을 다 해야죠. 끝까지 해결해야 그게 맥가이버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우리동네 맥가이버> 정규영씨의 작업이 마무리되자 환호하는 일행들에게 땀이 많이 난 얼굴로 그가 한 말이었다.

콘센트와 LED등 교체 등 두 집을 마무리했을 뿐인데 오후 2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3시 가까이 돼서야 그들은 국수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50+세대가 하면 보람도 사회공헌도 남다르다

 

 

7월 한 달 동안 방학2동 <우리동네 맥가이버>팀의 활동은 여름 날씨만큼 뜨거웠다. 침침한 형광등을 LED 등으로 교체, 방충망 교체, 에어컨 배관 청소와 누수 수리, 싱크대 수도꼭지 수리, 화장실 변기와 샤워기 수리, 화장실 타일공사, 밥솥과 청소기 수리, 냉장고와 세탁기를 옮겨달라는 부탁도 척척 해결했다. 살아온 세월만큼 진정성을 담아 취약계층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것들을 고쳐 달라 요청이 들어올지 모르니 동네를 다닐 때 기본 연장이 다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늘 메고 다니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요즘은 동주민센터에서 기본 공구들을 빌릴 수 있다지만 수리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매번 동주민센터로 빌리러 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수리를 마치면 노인들이 고맙다며 음료수라도 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이 분들께 도움이 많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보람도 느끼죠. 공직생활하면서 자원봉사도 많이 했지만 은퇴하고 나서 활동을 해보니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예요.” 방학동 주민이기도 한 <우리동네 맥가이버> 김용재씨의 활동 소감이다.

“2013년 서울에너지설계사 1기로 활동을 했어요. 활동기간이 끝나면서 단열과 같은 취약계층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죠. 그러던 차에 취약계층의 오래되고 낡은 집을 손보려면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작년부터 <우리동네 맥가이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은평구 불광1동과 갈현1동에서 이미 맥가이버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오여주씨는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감소시켜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다.

“자재를 장만할 때도 더 알뜰하게 구매해서 한 푼이라도 절약한 비용으로 한 집이라도 더 무료로 고쳐주려 하는 편입니다.”

<우리동네 맥가이버> 중 못하는 게 없는 마이더스 손, 정규영씨의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파란조끼를 입은 <우리동네 맥가이버>는 오늘도 취약계층의 불편함을 살피러 동네를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