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배우는 귀농 귀촌 자격 테스트

 

은퇴한 이들 꿈에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자연에서의 유유자적이다. 그래서 매일 전원주택 매물을 검색해보지만, 내 돈에 맞는 집은 땅 끝 마을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전원생활 선배들은 집보다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를 먼저 알아보라 충고한다. 이번엔 TV 프로그램 자연인에 채널을 고정하는데 체력, 손재주, 특기 등 만만치 않은 구력(舊曆)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한 달에 한 번 반찬이라도 줬으면 싶은 반려자는 함께 TV를 보다가 죄다 실패한 인생들뿐이구먼. 지저분한 가건물에 산 도적 같은 꼬락서니들이라니. 자연에 폐 끼치고 있네.” 하며 혀를 끌끌 차며 나간다.

책과 영화에서라도 위안을 찾아볼까?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나라 일본. 깔끔한 국민성답게 자연에 예()를 다하며, 정갈한 집과 차림새, 사색, 음식으로 매혹하며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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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열두 달, 흙을 먹다> 얼리버드픽처스) 

 

 

나카에 유지(中江裕司) 감독은 <열두 달, 흙을 먹다らう十二(The Zen Diary)>(2022)에서 장년(長年) 남성 작가의 산속 삶을 이상적으로 그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나가노현 산속, 간결한 초가집을 휘감는 계절의 변화 - 경칩, 청명, 입하, 소만, 망종.... 절기에 맞춰 철학적 명언을 읊으며, 수수하나 말끔한 옷차림으로 숲이 보이는 창가에서 고승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 츠토무(사와다 켄지沢田研二). 그의 글을 받기 위해 힘겹게 산을 오르는 출판사 여직원에게 곶감과 말차를 내주고, 지붕을 고쳐주는 목수와 물이 흐르는 마당에서 옛날 산 꾼 음식을 나누며, 홀로 사는 장모를 찾아가 함께 식사한 후 된장을 얻어오고, 아들과 소원해진 장모의 장례식까지 도맡아 조문객에게 전통 장례 음식을 정성껏 대접한다.

숯불에 굽는 토란, 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양하를 넣어 뭉친 주먹밥, 된장에 버무린 시금치, 죽순 찜, 간 깨를 칡 전분으로 굳혀 두부 모양으로 만든 향토음식 고마도후, 유명 요리 연구가 도이요시 하루가 푸드 디렉터로 참여했다.

원작은 헤아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소설과 전기 등을 쓴 미즈카미 츠토무水上勉(1919- 2004)의 자전 요리 에세이 두 편. 원작가가 현현(顯顯)했나 싶을 정도로 비슷한 이미지로 담백(淡白) 무심한 연기에다, 서정적

주제가까지 부른 사와다 켄지. 이 영화로 제96회 키네마 준보 선정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는데, 믿기 어렵지만 일본의 데이비드 보위라 불리며 1970, 80년대 일본 가요계를 풍미했던 록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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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름 없는 춤> 디오시네마) 

 

 

일상의 모든 장소에서 즉흥적으로 춤추는 장소의 춤場踊을 개척한 무용가이자 배우 다나카 민田中泯(1945- ). “무용할 힘을 기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라는 완벽주의 예인(藝人)이다. 다나카 민을 당당한 게이 어르신으로 캐스팅했던 <메종 드 히미코メゾン・ド・ヒミコ>(2005)의 감독 이누도 잇신犬童 一心이 그의 농사와 춤 여행을 <이름 없는 춤名付けようのない(The Unnameable Dance)>(2022)에 담았다.

1945년생, 일본 남자치곤 178cm의 큰 키와 골격이 살아있는 체구라서, 댄서와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이상한 다나카 민은 1985, 40세에 야마니시 마을로 들어가 농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농사를 시작했다. “댄서는 춤을 추기 위해 몸을 만든다고 하는데 춤추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밭일로 몸을 만들며 3,000회가 넘는 공연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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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생 후르츠> 엣나인필름) 

 

 

꼭 산으로 들어가야만 자연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후시하라 겐시伏原健之 감독의 <인생 후르츠人生フルーツ(Life is Fruity)>(2017)는 아이치현 가스가이시 고조지 뉴타운 한구석, 숲에 둘러싸인 단층집에 살았던 노부부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나무 스푼으로 감자와 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과 잼 바른 토스트를 먹는 아내지만, 노부부는 배려와 공부로 정원을 가꾸며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는 르 크로뷔지에의 말을 실현한다.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津端修一씨는 1960년대, 바람이 지나다니는 숲이 남아있는 뉴 타운을 기획했다. 그러나 당시는 고도 경제 성장기,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무미건조한 대규모 주택 단지들이 들어섰다. 슈이치씨는 1975년에 자신이 참여한 뉴 타운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숲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0, 90세 슈이치와 87세 아내 히데코는 키친 가든에서 키운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로 자연의 음식을 해먹고, 베틀 작업까지 하며 도심 속 자연섬에서 살아간다.

이들 부부의 책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ひでこさんのたからもの>>(윌스타일),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あしたも,こはるびより>>(청림Life)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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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모리의 정원> 영화사 진진) 

 

 

내 집 정원이 자연의 모든 것이라 여기며 은둔했던 화가도 있다. 구마가이 모리카즈(熊谷守一, 1897- 1987)의 고집스런 노년 삶은 오키타 슈이치沖田修一의 극영화 <모리의 정원モリのいる場所(Mori, The Artist’s Habitat)>(2018)으로 되살아났다.

1932년 도쿄도 도시마구에 집을 지어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정원을 우주보다 넓다 여기며 은거했던 화가. 영화 속, 94살의 모리(야마자키 츠토무山崎努)는 낮에는 정원의 작은 생명들을 관찰하고, 밤에는 학교라 부르는 자신의 화실에서 붓을 잡는다. 소박하고 단조로운 삶이지만 모리에게 정원은 매일이 새로운 자연. 움튼 싹을 보며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고 읊조리는 대사는 그의 자연관, 회화관을 말해준다. 1985, 그의 집터에 도쿄도 구마가이 구립 모리카즈 미술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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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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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출처 : 경향신문)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田舎暮らしにされない>>(2008)를 읽고도 귀농 귀촌이 만만하고 낭만적인 버킷 리스트로 남아있다면, 그대는 귀농 귀촌에 성공할 수도 있는 강심장임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시골이 더 시끄럽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간 왕따 당한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자신이란 자연을 먼저 지켜야 한다..... 소제목만 읽어도 자학 피학적인 웃음보가 터지는, 맹렬한 질타의 에세이. 책 한 권을 그대로 사경(寫經)하고플 만큼, 블랙 유머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다.

얼마나 자신감 있게, 자신을 완벽 컨트롤하며 살고 있으면 이런 독설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일까. 지금껏 읽어온 마루야마 겐지의 글에 기초하자면, 그는 자신의 글이 독설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 정도 글에 상처 입는다면 당신은 제대로 된 인간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겐 일상어, 아주 가벼운 비유에 불과한 글이 보통 이하 인간에겐 얼마나 가혹한 매질인지,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일본인, 자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닦아세우며 경지에 이른 인물을 존경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만 먹어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이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덧없는 죽음을 자연이 변모하는 일부로 받아들여 미소 지으며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당신의 시골 생활은 제격을 갖추고 자연 속 생활의 진수도 맛볼 단계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의 원제목은 <<시골 생활에서 죽지 않는 법>>이다. 우리말 제목이 얼마나 말랑말랑하게 바뀐 것인지.

 

 

 

 

시민기자단 옥선희 기자(easto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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