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認知) 저하(低下) 관련 영화 2: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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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 殯の森(The Forest Of Mogari/ The Mourning Forest>(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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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너를 보내는 숲>이란 우리 말 제목은 낭만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원제목의 ‘모가리(殯)’는 일본 고대로부터의 장례 의식을 이른다. 죽은 이를 제대로 묻기 전, 시신을 판에 안치하고 소중한 이의 죽음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시간, 혹은 그 판을 안치한 장소를 말한다. 상(喪)이 끝났다는 ‘모아가리’가 어원이다.

 

<너를 보내는 숲> 마지막에 자막으로, 그리고 DVD에 수록된 스페셜 피처 <천년 묵은 카스가 삼나무에서 시작된 생명에 관한 이야기>에서 감독 가와세 나오미(河瀬直美, 1969년 - )의 내레이션으로, ‘모가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일본 동부 산간지방 타와라의 매장 풍습과 장례를 직접 참관했다고 한다. “함께 살던 이를 자기 손으로 묻는 의식이 중요하다.”고 보았기에, 영화와 직접 상관없는, 하얗게 나부끼는 만장과 붉은 지우산을 따르는 장례 행렬이 녹차 밭을 지나는 원거리 촬영 장면과 대나무를 다듬는 등의 준비 과정을 영화 도입부에 넣었다고 한다. 그 밖에 감독이 밝힌 <너를 보내는 숲>에 영감을 준 것들을 알고 나면, 자연 묘사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과묵한 영화에 깊이 동화될 수 있다.

 

 

감독의 고향 나라현의 카스가야마 원시림에서, 천 년 이상 된 삼나무가 낙뢰에 불타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신문 기사. <너를 보내는 숲> 후반에, 사람 대여섯 명이 둘러싸도 다 안기 힘들만큼 거대한, 뉴스 속 삼나무를 두 주인공이 황홀하게 올려다보고 안아본다.

 

감독은 부모 대신 자신을 입양해 길러준 할머니/ 양모의 인지 저하 치유를 위해 요양원을 알아보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일상을 보내는 그룹 홈에서 지내는 인지 저하 남성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 남성이 <너를 보내는 숲>의 주인공 시게키(우다 시게키)가 된다. “사람들은 인지 저하 노인의 외양만으로 그들에게 영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영혼의 존재이며, 영혼은 관계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너를 보내는 숲>의 그룹 홈 요양원을 지은 제작진은 “진짜 요양원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한다. 나라현의 나카오농원 안, 100년 된 전통 가옥을 요양원으로 리모델링해 촬영했으니 말해 무엇 하겠나. 대숲과 녹차 밭, 커다란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전통 주택 안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서예도 하고, 밥도 해 먹고, 텃밭에서 호박과 방울토마토를 따며 한가하게 지낸다. 가끔 스님이 방문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때 시게키가 묻는다. “나는 살아있습니까?” 스님의 답. “산다는 덴 두 가지가 있어요. 그저 밥 먹고 산다는 것. 옆 사람 에너지가 느껴진다면 그게 진정 살아있다는 겁니다. 산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 건 마음이 비어서입니다. 空이 아닌 虛입니다.”

 

시게키의 아내 마코의 죽음으로부터 33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이렇게 위로한다. “33년은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 부처님이 되는 해로, 이젠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시게키는 그 말에 화를 낸다. 아직 아내를 마음으로부터 보낼 준비가 안 된 것일 테다.

 

신참 요양보호사 마치코(오노 마치코)는 무언가 잔뜩 든 낡은 배낭을 소중히 여기며, 서예 시간에 마치코가 쓴 이름 ‘真千子’ 에서 ‘千’자를 마구 뭉개며 “마코(真子)야”라고 심술부리는 시게키에게 관심이 간다. 차 밭을 뛰어다니는 숨바꼭질로 친해진 두 사람은 마코의 무덤을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은 원시림을 헤매다 폭우도 만나고, 모닥불 곁에서 알몸으로 몸을 비벼주며 1박2일을 함께 한다.

 

마침내 작은 나무 아래 멈춘 시게키는 배낭에서 아내가 떠난 1973년부터 33년간 쓴 일기들을 꺼내놓으며, “오랜 시간 그저 갈팡질팡 살았어. 늘 곁에 있어주어 고마웠어.”라며 눈물 흘린다. 오르골을 마치코에게 준 후, 땅을 판 시게키는 그 안에 눕는다. 시게키를 끌어안은 마치코는 하늘을 우러르며 쉬지 않고 오르골 태엽을 감는다.

 

 

시게키에게 아내 마코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두 번 나타나, 함께 피아노를 치고 손잡고 춤을 추었다. 사랑했던 아내, 33년 전에 떠난 아내를 마음에서 놓지 못했던 시게키에게 인지 저하라며, 자꾸 이쪽 세상으로 불러내고 이쪽 세상 규칙에 맞추어 살라고 강요하는 게 온당한가, 인지 저하 의식 흐름을 따라가도록 도와주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를 보내는 숲>은 캐릭터가 강하게 드러나거나, 플롯이 명확한 영화가 아니다. 이 시공을 메우는 것이 명징하게 혹은 아련하게 잡아낸 자연의 소리와 영상 - 대숲과 논을 스치는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빗소리, 운무 낀 산, 해바라기, 나비, 석양 등이다. 영롱한 피아노 연주곡도 보는 내내 마음을 흔드는데,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어릴 때 치던 낡은 피아노를 숲속 현장으로 가져와, 어린 소녀가 연주하게 했단다. 치밀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스페셜 피처에는 영화에 넣지 않은 환상의 라스트 씬, 시게키와 마치코의 헬리콥터 구출 장면이 들어있다. 이들이 원시림에서 구출되어 현실로 돌아왔다면, 원시림을 헤맨 시간의 의미는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의식으로도, 생의 슬픔을 삭이는데도, 97분 영화의 반 이상을 채운 숲속의 헤맴은 꼭 필요했을 것이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너를 보내는 숲>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이 세상은 멋진 곳 같다.”고 했던 감독은 스페셜 피처 마지막에서 이렇게 내레이션 한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빛, 바람, 죽은 이도 마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우리라는 존재는 거목에서도 혼자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