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주팔자를 갖고 싶다. 

 

길음동에서 동선동으로 가는 내리막길 미아리고개 아래는 역술원이 많이 있다. 미아리고개 아래에는 1980~90년대에는 역술원, 철학원들이 줄지어 100여 개나 있었다고 한다. 점집으로 워낙 유명해서 궁금한 일이 있으면 미아리에 가봐라’, ‘미아리에 자리 깔아라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곳은 입시 철이나 선거, 정권이 바뀔 때쯤 사람들이 비슷한 내일이 궁금한 시기에는 더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여기에 이렇게 역술원들이 모이게 된 것은 1966년 소문난 역술인 이도병 씨를 시작으로 1960년대 남산 일대 개발 명목으로 쫓겨난 점술가들이 미아리고개로 다시 모이면서 점성 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어른들이 자식의 혼담이 오가면 궁합을 보러 가곤 했다. 지인의 언니가 영국인과 결혼한다고 집안에 시끄러워졌을 때 일이 있었다. 외국에 대해 경험치가 적었고, 왕래도 드물었기 때문에 영국으로 떠난다는 언니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다. 가족들은 외국으로 떠나는 언니가 과연 잘살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미아리고개 역술원에 가서 묻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 엄마의 신앙심이 걸림돌이었다. 미아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지만 종교적 신념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믿음이 낮은 둘째 딸이 엄마 눈에 띄었다. 둘째 딸이 가면, 보살님에게 언니 결혼에 대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고, 신앙도 지킬 수 있는 일거양득이었다. 내 친구 둘째 딸은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혼자 점상촌을 서성이며 마땅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불쑥 들어갔다고 한다. 예상대로 현란한 천들이 어두운 방에 어우러져 널려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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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의 첫 질문, 한자의 획순과 태어난 시간이 언제냐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생일과 이름만 답하고, 정신없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는 말들로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언니는 영국에서 아무튼 잘살고 있다.

 

나는 50살을 코앞에 두고 퇴사를 고민하는 2018년이 되었다. 갈 곳은 없으나 퇴사에 홀려서 하루를 1년 같이 지냈다. 미아리 철학관까지는 아니고, 북촌에 있는 아무 타로 카페를 찾아가 궁금한 걸 묻기 시작했다. 퇴사해도 갈 곳이 있다는 말에 나의 심장이 뚫렸다. 왜냐하면 너무나 간절하게 듣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전문가라고 확신했고, 조언에 따라 12월에 퇴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용하다고 소문을 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운세를 본다는 것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차피 그가 뭐라고 해도 퇴사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취업에 실패하면 찾아가서 그때 갈 곳 있다고 하지 않았냐며 생떼를 쓰기도 하는 진상도 부렸다. 그 용한 집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나는 그의 말 때문인지 어딘가에 다니고는 있다.

 

지금은 사주도 검색이다. 역술원들이 굳이 일정 장소에 모여 있을 필요는 없다. 그것을 말해 주듯이 이제 미아리고개 밑에 200여 곳이나 되던 철학원이 20여 곳밖에 없다. 젊은 층은 타로처럼 가볍게 접근하거나, 핸드폰에 사주 앱으로 운세를 확인한다. 어디에 가서 묻지 않아도 다른 여러 가지 경로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가느다란 운세에 자신을 맡기고 싶은 말에 위로받고 싶어 한다.

 

 

50+시민기자단 우은주 기자 (wej25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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