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Well-dying) 존엄사의 사회적 공감대, 어디까지 왔나

 

 

 

50플러스 세대들은 누구나 한 번쯤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서, 웰다잉(Well-dying) 존엄사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려 한다. 

 

배우 윤여정(소영 역)이 주연한 2016년도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한 장면이다. 제목 자체로 묘한 끌림(?)이 있었던 영화다.

 

image01.png
▲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소영은 종로 파고다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다.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입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어느 날 소영은 한때 자신의 단골고객 중 한 노인을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다. 반갑게 짧은 얘기를 주고받다가, 예전에 좀 특별했던 송 노인(박규채 분)의 근황에 대해 묻는다. 송 노인은 만날 때마다 수제 양복을 말끔하게 빼입고 나오던 멋쟁이 노인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한 가닥 연민이 남아선지, 누워있다는 요양병원에 찾아가 본다. 예전에 만날 때는 곱게 늙어가는 멋쟁이 노인이라 생각했는데, 초라한 노인이 의식조차 가물가물한 채 병상에 누워있다.

 

가까스로 소영을 알아본 송 노인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내게서 냄새나지?” 하고 묻는다. 그 순간 요양보호사가 와서 아랫도리를 홀딱 벗겨내고 몸뚱이를 이리저리 제쳐대며 분주히 배설물 처리를 한다. 송 노인은 보여서는 안 될 치부를 드러낸 치욕과 수치심으로 몸부림친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요양병원에 면회를 왔다. 며느리는 제법 걱정하는 척하며, 이런저런 상투 박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전혀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배우고, 잘난 여자(?) 딱 그런 모습이다. 아들도 ‘나 사회에서 성공했소’ 하는 그런 포스가 느껴진다. 손자 손녀는 저만치 떨어져 할아버지를 보는 둥 마는 둥 자기들끼리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장난질 치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와 잠깐 들른 듯하다. “얘들아, 할아버지께 와서 인사드리고, 뭐라 말씀 좀 드려야지?” 아버지의 말에, “냄새나요. 가까이 가지 못하겠어요.” 손자 손녀의 대답이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에 재차 요양병원을 찾았던 소영은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아들네 가족과 마주친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며느리의 의심쩍은 질문이 송곳처럼 찌른다. “네, 알고 지내던 친구예요.”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세요. 저희 아버님, 남은 재산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서 싸가지(?)는 뒤돌아서 나간다.

 

병실에서 마주한 송 노인은 소영에게 간절히 애원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몇 날 동안 고민하던 소영은 마침내 결심하고, 송 노인을 찾아가 입속에 묽은 액체를 흘려 넣는다. “캑~ 캑” 몇 번 하던 송 노인은 잠시 후 조용해진다. 이렇게 한 노인의 구차한 말년은 끝이 난다.

 

이를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제2, 제3의 고객 노인들의 부탁이 이어지면서, 소영은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되어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돕는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서 노년의 품위 있는 죽음,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데, 때마침 지난 3월 ‘세기의 미남’이라고 불리는 알랭 들롱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락사 찬반 논쟁,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 76.3%가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조력 존엄사’란 환자 본인이 원하면 담당 의사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해외에선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로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화되어 시행 중이다.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라도 하는데, 이번에 발의하는 ‘조력존엄사법’이 추가로 합법화되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고 있는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데 진일보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전문 지식에 의하면,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조력 자살, 소극적 안락사로 나뉘는데,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타인(의사)’이 끊는 것, 조력 자살은 타인의 도움으로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중 연명 치료 중지에서 의사의 조력 자살까지를 존엄사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존엄사의 경우 사망이 임박한 환자가 더 이상 연명 치료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며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지만, 통증 완화 치료와 함께 영양분이나 물·산소 등은 계속해서 공급받는다고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조력 자살과 안락사를 모두 인정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콜롬비아 등이며, 스위스와 미국 일부 지역에선 조력 자살만 허용하고 있다. 로마 교황청은 안락사와 조력 자살 모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모두 불법인데, 다만, 2018년 2월 4일부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대한 논의가 단순 ‘찬반 논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법은 오용·남용하는 사람이나, 이를 잘못 해석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들도 다수 있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모든 부작용을 검토한 뒤 엄격하고 세세한 안전장치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웰다잉(Well-Dying)’ 체계를 마련하는 과정이 선행되거나, 적어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의학적 마무리’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가족·직장·친구 등 자신을 둘러싼 이들과 작별하는 ‘삶의 마무리’를 존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문구가 머릿속에 뱅뱅 맴돈다.

 

 

50+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swkoo0212@naver.com)

 

 

구세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