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장 힘든 것은 갈 곳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직장으로 향했지만, 이젠 가야 할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직 후 우울증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무력감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퇴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나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잊고 있던 친구들이라도 찾아봐야겠다는 사소한 계획조차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동창회나 산악회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굳이 과거의 인연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상에는 수많은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지역마다 모든 종목의 스포츠동호회가 있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도 많습니다. 또 각 지자체마다 자원봉사센터도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학습할 수 있는 동아리도 많습니다. 더구나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모임이나 동아리는 대개 최소한의 실비로 운영됩니다.

 

 

자원봉사자의 행복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자원봉사….’

대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시간이 많은 사람이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않고 시간도 부족합니다. 주부, 택시 기사, 소규모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시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늘 시간이 부족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이지요. 물론 자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는 CEO도 있습니다. 이 분들도 시간이 남거나 돈이 많아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면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2012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간 중 10분 정도를 남을 위해서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파벳 베끼기 같은 의미 없는 일을 하거나 자유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꼈습니다. 남을 도울수록 자신이 소유한 시간이 더 크게 확장된 것입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행복과 건강과 자존감이 향상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외로움이 줄고, 의미 있는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 2,6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1년 연구에서도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행복감, 삶의 만족도, 자부심이 높았습니다. 또 행복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봉사활동은 건강과 젊음을 가져 온다

봉사활동은 인생을 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듭니다. 2017년 벨기에 연구팀이 유럽 29개 국가 4만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원봉사를 하면 취업에 더 유리할 뿐 아니라 더 건강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일반인보다 더 건강했으며,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5년 정도 더 젊었습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은 소득도 더 높았고, 이 때문에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습니다. 첫째, 자원봉사자들은 자존감이 높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기 때문에 사회에 쉽게 적응하며 정부의 다양한 지원제도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원봉사 활동이 신체적 활동과 인지적 활동을 증가시켜 신체기능 저하와 치매를 예방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남을 배려할 때 나오는 신경호르몬이 스트레스를 낮추어 행복감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자원봉사 활동은 지난날의 아픈 상처도 치유해줍니다. 이라크 전쟁 등 참전 경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퇴역군인들의 정신적 상흔까지 봉사활동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17년 미국 연구팀은 퇴역 군인들에게 지역사회에서 6개월 동안 매주 20시간씩 자원봉사 활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연구팀이 2011~2014년 사이에 이 프로그램을 완수한 346명의 퇴역군인을 조사해 보니, 트라우마 증상을 가진 사람이 50%에서 43%로,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23.5%에서 15%로 줄었다고 합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모임이 존재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집안에 틀어박혀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타인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아침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세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고자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