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라고 한다. 간절한 그리움과 기도가 생각나는 계절, 옷깃을 세우고 긴 코트 휘날리며 바스락거리는 낙엽사이를 한없이 걷고 싶은 계절. 묵은 그리움이 올라오면 긴 편지도 쓰고 싶다. 대중가요 <갈무리>에 흠뻑 젖어도 본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강물을 한없이 바라보고픈 시간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의 잠자리, 한들한들 힘 뺀 코스모스의 몸짓, 갈대들의 쓸쓸한 합창, 얼굴을 스치는 스산한 바람, 멍석 위 빨갛게 누워 있는 고추들, 호수에 드리운 싸늘한 달빛, 밤새도록 울어대는 풀벌레들, 이슬 맺힌 들국화를 노래하는 고독한 시인이 가을을 알린다.

시인 김현승은 '가을의 기도'에서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를 자신으로 표현하며 절대고독을 "마른 나뭇가지"로 표현했다.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가을은 정리의 달"로 표현했다. 그녀는 뼈 속까지 혼자인 듯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산업에도 수없이 다양한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블루재스민>,<인디에어>,<아멜리에>라는 영화는 다양한 인간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와 극복하는 방법들을 보여준다.

스파이크 존스의 <Her>라는 영화가 있다.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외로운 남자 <테오드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외로움 속에 있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컴퓨터 운영시스템인<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미래의 도시 상하이의 고층빌딩에서 거주하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컴퓨터와 사랑에 빠져 감정의 기복을 겪는 독특한 영화다. 결국 다수를 상대하는 <사만다>와의 사랑을 접고 옛 여자 친구를 찾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성공한 남자들의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소식은 종종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왜?"라고 우리는 반문한다. 남자들은 수많은 명함을 갖지만 퇴사하는 순간 관계의 절벽을 갖고 그 명함 속의 인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인간관계의 수직낙하는 자신이 살아 온 가치를 뒤흔들어 버린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우울증전문가 토머스 조이너 교수는 <남자 외롭다>에서 "남성들의 관심사는 직장에 쏠려 있었고 일자리 불안과 직장 내 경쟁, 심지어 동료 간의 적대감을 걱정했다. 남성들은 타인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러나 직장이란 버팀목이 사라지고 소통능력도 부족하고 가족 관계조차 소원해지면 정서적 고립감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가까운 친구라도 떠나면 더욱 위축된다. 남성들은 이 자존감 때문에 타인에게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2035년에는 혼자 사는 가구가 둘 이상 사는 가구보다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외로움, 고독감으로 인해 우울증 뿐 아니라 고립감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증가할 것이다. 노인이나 장애인, 다른 취약 계층들이 물리적으로 고립되고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은 구조적인 원인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늘어나는 고독사와 우울로 인한 50대 자살은 보다 체계적인 민관협동의 예방과 관리가 전적으로 필요하다.

'나홀로족'을 위한 외로움 산업도 급격히 발달하고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미국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 버그에 따르면 "과거엔 '솔로'는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현대는 혼자로도 부족함이 없어 남들과 나눌 필요가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인형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카페도 등장했다. 미국에는 로봇과 산책하는 '피플워크'라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반려로봇 시장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남편을 렌털하는 서비스도 있다.

세계 곳곳은 4차 산업시대와 더불어 이런 외로움관리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에 맞서 싸우자는 자선단체도 있다. 영국에는 20181"고독과 싸우는 일은 정부의 과제"라고 선포하고 <테레사 메이>총리는 <외로움 전담 장관>을 임명했다.

16세기에서 근대 영국 초기엔 외로움이라 표현한 개념은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오는 위험의 신호 정도로 여겼다.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과 직결했다. 즉 위험할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면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외로움은 사람이 넘쳐나는 도시에 살아도, 이웃과 친구가 가까이 있어도 잘 해결할 수 없다. 이 외로움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이를 치유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같이 사는 것보다 혼자인 것을 더 편하게 여겨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만 간다. 이리하여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해체되고 공동체도 무너져 간다.

결국 외로움이란 물리적 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껴 힘들어한다. 고독과 외로움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명확한 해결책이 없고 실체가 잘 잡히지 않으며 추상적 개념에 머무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50+세대는 가을이 아니어도 외롭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 시기에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슬픔으로 허우적거린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때로는 자신 뿐 아니라 주변 가족들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만성고독은 하루에 담배 15개비 피우는 것에 맞먹는다고 한다. 음주보다 위험하며 치명적일 때도 있다.

여자의 외로움이 깊어지면 온 가족이 힘들기 쉽다. 특히 갱년기를 맞이한 여성들의 변화는 갱년기가 되면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여성호르몬 부족은 짜증과 우울을 불러일으키고 남성호르몬 증가로 거칠고 공격적 성격이 된다고 한다.

피곤하거나 우울하면 여성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량이 감소된다. 이때 당을 섭취하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올라가 안정감을 갖게 된다. 일시적이므로 다시 당을 찾게 된다. 당을 끊으면 우울감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여성호르몬 분비량 감소로 인한 갱년기 건망증은 깜빡깜빡 하는 일도 잦아진다. 소지품, 핸드폰, 열쇠, 가스 불 등을 특히 깜빡한다. 외출하다 가스 불 때문에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강박증은 생활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다.

특히 50+세대들이 겪기 쉬운 우울증 하나가 <빈둥지증후군>이다. 자녀의 독립으로 인한 허전함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다. 허무함이 낳은 우울감은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더 나아가 무기력증에 걸리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녀에게 조금만 서운한 말을 들으면 서운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젊은 시절 자녀양육에 올인한 사람일수록 더욱 크게 느끼고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다. 때로는 이것을 섭식으로 풀며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빈둥지증후군><갱년기우울증>이 만나면 쇼핑중독이나 음주에 빠질 수도 있다.

우울증 걸린 사람은 각성호르몬 코티졸이란 호르몬체계가 무너져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기분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한다. 우울증은 단기간에 치유되지 않고 심각할수록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보통 우울증 초기 증상은 아침에 심해지고 해가 지면 좀 나아지지만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사무치게 외로운 이들에게조차 외로움은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긴 채 다가간다."라고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도 나왔다. 10년 넘게 가벼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겪다 못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나누게 된 대화를 엮은 책이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 자체를 없애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사는 법이 필요하다. 애매할 때는 전문의의 도움도 필요하다. 때로는 약물과 상담이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좋은 방법으로 잘 쓰지 않는 뇌를 사용하는 물리적 방법이 있다. 떨어진 기억을 되살리고 지나친 강박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잘 쓰지 않는 손을 사용하는 법이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왼손잡이는 오른 손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상황에 따른 외로움은 지극히 정상이다. 스스로 더욱 고독으로 몰아넣기보다 경험을 공유하고 외로움을 나누는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다. 자신이 어떻게 외로운지, 왜 외로운지 설명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자연의 공기를 접하며 대화를 나누고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문학작품을 읽고 나누는 작업도 좋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종종 다른 작가들의 외로움이 가득한 문장을 그대로 베껴 적으며 영감을 얻고 또 글을 쓰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외로움을 공감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며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함께 외로워할 수 있는지 배우기도 했다.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계로록>의 저자 <소노 아야코>1931년 생으로 나이 40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기록했다. 그 중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한 사람 한 사람 줄어든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 날 낯 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은 노인에게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매일 함께 놀아 주거나 말동무를 해 줄 사람을 늘 곁에 둘 수 없다. 목표를 설정해서 노후에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외로움을 덜기 위한 또 하나는 '자신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외로움을 알아주면 좋지만 마냥 기다리기에 먼저 지쳐버린다. 외로움은 자신의 몸에 부조화가 있어서이다. 인식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디서 오는 외로움이 원인인지 모르나 스스로에게 작은 성취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때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했든 "잘했어"라며 자신을 칭찬하는 자존감 수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경쟁에 익숙한 50+세대에겐 외로움을 덜기 위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있다.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으로 버리기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투쟁하듯 살아야 할 이유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지 못해 온 몸이 아프다. 스스로 그 짐을 짊어지려 한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빼기의 계절 가을이다. 완벽이 목표가 아니듯 집착도 목표가 될 수 없다. 미래, 여가, 관계, 강박, , 자식 등 그것이 집착임을 인지한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으로 인한 외로움을 과감히 사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또한 실천이 쉽지 않다.

그래서 완전한 내려놓음은 어렵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으로 자신을 다져가야 할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노래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라고.....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