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사람은 실속이 없을 경우가 많다. 음흉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단아하거나 내공이 있어 보이기는 어렵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가 지침으로 통용된다는 건 중장년들의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50+분들과 함께 하는 그룹코칭 회기에서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쉽사리 그 말들을 끊을 수 없는 건 그 속에서 많은 경험들을 의미 있게 나누고 싶은 선한 마음들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란 게 하면 할수록 무언가를 소진한 듯 지치고 허전할뿐더러 가끔은 실수를 할 가능성도 있어서 문제다. 말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남의 말을 하게 돼 고민이에요

최신 이슈가 거의 다 반영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어떤 이가 글을 올렸다.

“말을 줄이고 싶다. 침묵이 어색해서 말하다보면 자꾸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칭찬 의도였어도 왜곡돼 전달될 수 있고 내 자신이 자존감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진다”는 고민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해라”, “모임 절친에게 브레이크를 걸어달라고 해라”, “침묵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지혜롭게 보인다는 성경말씀을 기억해라“ 등등 과연 여러 의견이 댓글로 추가되었는데, 역시 재야의 고수가 등장했다.

“왼쪽 팔목에 노란고무줄을 차고 있다가 말이 많아진다 싶으면 한번 튕깁니다. 살짝 아프게...” 라는 답이었다. “아 좋은 방법이네요.” 이구동성 댓글이 달렸다.

‘팔목 고무줄 튕기기’ 는 글쓴이가 상담 장면에 들어가기 전 애용하는 ‘옷의 단추를 말문 닫기 버튼으로 상상하기’ 방법과도 유사해서 공감이 갔다.

 

말로 인한 즐거움과 괴로움

이 글을 쓰는 나는 현 직업인 코치가 되기 전 출판 편집자로 20년을 보냈다. 출판계는 다들 말 못해 죽은 귀신이 씌었나 싶은 동네였다. 수시로 이어지던 출간아이템 회의에서는 말이 말을 물고 곁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늘 말잔치가 벌어졌다. 난장판 가운데서 대박 아이템이나 보물 같은 카피 한 마디를 건지기도 하는 그 확장형 회의가 당시의 일상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런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 2막에서 상담사, 코치가 된 후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자타공인 말하기를 좋아하는 인간형이었던 거다.

슈퍼비전을 받을 때 내담자보다 말을 더 많이 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축어록을 볼 때면 너무나 민망하고 창피했지만 한순간에 잘 고쳐지지 않았다. 사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자칫 긴장의 끈을 놓으면 행하는 실수다. 상담이나 코칭 장면에서 집중하던 것의 반작용으로 일반 대화에서 봇물처럼 말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다.

 

덜 익은 말은 줄이고 숙성된 말을 하려면

초보코치 시절, 멘토코칭을 해주던 한 선배는 자신 또한 같은 고민을 했었다면서 자신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작은 반가사유불상 모형을 책상에 올려두고 늘 본다고 했다.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하는 부처의 모습이 마치 ‘쉿’ 하는 신호를 주는 듯해서 스스로에게 주는 가르침으로 환기하기에 좋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도 유용하기는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을 살피는 게 보다 중요하다. ‘말을 하는 나는 말을 통해 정말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왜 내 마음속 소리는 잘 듣지 않을까

소리를 듣는 신체기관인 귀에 내이(內耳), 외이(外耳)가 있듯이 나의 마음 속 소리를 듣는 내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소통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으면서도 타인 뿐 아니라 정작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왜 말이 많아질까? 나 자신에게 퉁을 주거나 지나치게 우쭈쭈하지 않으면서 담백하게 내 속마음을 들어보자. 여태까지 잘 살아왔고 지금도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 잡다한 생각들을 말하면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 그저 사랑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 마음들 ...

 

나만의 항아리에 발효와 숙성을 시켜보자

절대적인 발언량을 줄이면서도 표현의 욕구, 소통의 욕구, 인정의 욕구들을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익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채 익지 않은 생각들을 입 밖에 내어 공중에 분산시켜 버릴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항아리에다 숙성을 시켜보면 어떤가?

누군가는 글로, 또는 그림으로, 켈리그라피로, 영상으로, 사진으로, 악기로, 노래로, 아니면 춤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고 다듬고 익혀낸 만큼 그 결과물은 날것인 말보다 훨씬 맛있고 향기 나는 무엇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필살기, 고품격의 취미,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상상치도 않았던 부가가치를 노년에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에는 인생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말에는 메아리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말은 남들도 듣지만 내 자신에게 제일 많이 울려 돌아온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건 나에게 제일 좋다. 내가 하는 말이 더 나은 내가 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내 말이 나를 그런 삶으로 이끌도록 내 안의 욕구들을 농축하고 숙성시켜보자. 엄격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가끔은 허리띠 풀고 맘껏 먹듯, 때로 편한 모임에서는 맘껏 수다를 풀어놓아도 좋다.

말을 숙성시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나만의 항아리를 만들자! 시간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짧게, 또는 훨씬 길게 남았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