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립’이라는 질병

 

관계 단절이 수명을 줄인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면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늙었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출근할 때와 달리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차림새도 신통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나면 실제로 늙는다. 2013년 핀란드 남녀 5,620명의 혈액 세포를 분석한 결과 직장을 떠난 사람들의 수명이 더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터를 떠났을 때 수명이 단축되는 이유를 단정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삶에 대한 상실감과 허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우울증이나 무력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들게 하는 일차적 원인은 관계의 단절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동물에게 고립은 죽음을 의미한다. 무리를 떠나 홀로 생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채집수렵사회에서 구성원을 처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추방’이었다. 실제로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 통증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 관계의 단절은 정신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뺨을 얻어맞는 것과 같은 신체적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다.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식욕만큼이나 절실한 ‘사회적 굶주림’이다. 따라서 관계의 단절이 수명을 단축한다는 사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사회적 고립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건강에 이상을 일으켜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사회적 고립을 ‘조용한 살인자’라 부른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유리병에 혼자 갇혀 있는 초파리는 수면 장애로 인해 더 일찍 죽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는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감기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실험에 참가한 18세에서 55세 사이의 미혼자 159명을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후 5일 동안 격리시키자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증세가 더 심각했다.

 

 

 

중년 이후의 고독

 

사람은 언제 가장 외로움을 느낄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외로움을 많이 탔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1만 6,000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2016년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두 차례에 걸쳐 심한 외로움을 겪는다. 30대와 50대다. 30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가장 많이 내려야 할 때다. 취업과 결혼, 자녀 출산, 주택 구입 등이 대개 30대에 이루어진다. 50대는 ‘중년의 위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때는 가족 간의 갈등, 자녀의 독립, 이직이나 퇴직, 호르몬의 변화 등으로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다. 특히 일자리를 잃은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감 자체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노년의 삶이 비참해질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고립감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널리 알라진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적 고립이 비만보다 훨씬 위험한 요인이며, 그 영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타인들과 사회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복지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미국정신의학연합회 자료에 의하면 사회적 연결이 확대되면 조기 사망 위험이 5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자

 

사회적 동물 중에서도 인간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같은 인간에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유일한 존재다. 거리에 나서면 무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외로움과 단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50플러스 세대는 자녀들과 어울리기조차 쉽지 않다. 관심사가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어렵다. 오히려 변화에 뒤처지거나 무시만 당할 뿐이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세상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꼰대 기질’을 버려야 한다. 나이 든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희 때가 제일 좋을 때다.”

“내가 그 나이 때는 돌도 씹어 먹었다.”

“공부만큼 쉬운 건 세상에 없다.”

 

그러나 이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나이가 얼마이든, 그 나이 때는 대부분 비슷하게 살았다. 그 나이에는 누구나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대충 학교에 다니고, 놀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지금의 젊은이들도 노인 세대만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어설픈 충고는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지난 일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감당하고 있는 고민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이든 세대의 노하우와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당장 생계 때문에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50플러스 세대가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일은 곳곳에 널려 있다. 낮은 곳에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