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를 살리며

 

 

 

야외에서 벗들과 모닥불 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지난여름 친구의 별장에서 마치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불씨 하나로 모닥불을 피웠다.

 

신문지를 말아 마른솔잎이나 잔가지를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붙여 살려내는 일은 조심스럽지만 흥분되는 일이다.

참나무 장작이 훨훨 타오르고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밝힐 때 밝은 빛과 함께 나무향기와 훈기가 온몸을 감싼다.

 

그 옛날 인류가 처음으로 불을 발견하여 몸을 녹이고 구운 고기를 나눠먹으며 그런 행복감을 느꼈을 터,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먼 기억이 내 몸 어디에 아로새겨져 있기에 평소에 해본일이 없는 불 피우기가 그렇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것일까.

 

인생의 오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한 내게 코칭과 베이비부머를 위한 생애설계프로그램은 가슴에 불을 댕겼다.

 

우리나라에서 1955년에서 1963년까지 전쟁 이후 태어난 714만의 베이비부머들은 모닥불에서 떨어져 나와 타오르던 불을 꺼뜨리느냐, 다시 살려내어 남은 반생을 빛나게 살아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

 

막연한 기대 속에 서성이는 사람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다 낙심하는 사람들, 직장에서 자리를 물려주고 나와 제2의 인생설계를 하는 중장년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하나 둘씩 생기는 50플러스캠퍼스와 50플러스센터에 가보면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며칠 전 새로 문을 여는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에서 사업설명회를 하는 자리에 갔더니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많은 중장년들이 프로그램을 넣고 강의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 선발된 이들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교육을 받고 수료한 후에는 모여서 알맞은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한 학기에 2천명이 넘는 분들이 교육에 참여한 뒤에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를 구성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취업을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장년들은 사회공헌도 하면서 일도 만드는 일을 선호한다.

세대 간의 협력을 통해 청년들의 일자리와 부딪치지 않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며칠 전에는 불광동에 있는 서부캠퍼스에 갔다가 협동조합으로 문화공간과 레스토랑이 전철역 앞에 생겼다기에 회식을 하러 갔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맛깔스러운 음식,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와 라틴댄스 강습이 가능한 플로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협동조합으로 멋진 공간을 만들어낸 그들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던 불광동을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불을 밝히겠다는 큰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그 공간의 이름은 루덴스 키친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을 즐기며 하면 50+ 중장년 가장과 어머니들이 힘을 얻고 가정에 새바람이 분다. 독립된 생활로 다음 세대를 위한 든든한 멘토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3세대, 4세대가 연합하여 안전하고 건강한 가정과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무얼까 궁리를 할 여유가 생긴다.

 

한 편으로는 지자체마다 가정생활과 자녀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강사로 역량강화를 하여 인성교육이나 진로지도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가끔 퇴직한 남성도 있지만 대부분 여성인 교육 강사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이자 선생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에 사명감도 높다.

 

그들의 의식수준과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혜안이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이 지대하므로 제도권의 교사 뿐 아니라 마을교사와 지역의 교육 강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유난히 마음이 설렌다.

 

4차산업혁명이 우리나라가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KCERN(창조경제연구회)에서 개설한 전문강사 프로그램에 참여했기에 어머니, 선생님들과 나눌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졌다.

교육강사 역량강화 프로그램에서 두 시간 동안 ‘4차산업혁명시대의 교육과 인재상에 강의를 하고 토론을 하는 동안 그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예기치 않게 가슴 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이 있다.

풋풋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나 걸음마 하는 아기를 만났을 때, 좋은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가 그때다.

 

상상력 가득한 학설을 듣고 마음껏 토론 한다던가,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더불어 미래지향적인 의견을 주고받을 때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불씨를 살리고 불꽃을 피워 생명을 북돋우는 일, 바로 우리가 인생 2막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