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50플러스센터 독서포럼 -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강의 

 

학습이 내 존재의 근본이라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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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의 저자인 서울대 이인아 교수

 

강서50플러스센터에는 ‘독서포럼’이라는 유서 깊은 모임이 있다.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책을 선정해서 각자 읽고, 그 소감이나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이다. 이 독서포럼에서 이번에 선정한 책이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다. 서울대 뇌인지과학과(腦認知科學課) 이인아 교수가 저자인데, 이번에 흔쾌히 저자 직강(?)에 응해주었다고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11월 24일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진행된 오프라인-온라인 병행 포럼에 기자도 참석을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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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친필 사인을 자랑하는 독서포럼 사회자

 

강의를 시작하는 이인아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학습하는 이유는 생존에 대한 본능 때문이란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환경(사물, 상황)에 직면하면 이를 머릿속에서 익숙한 것으로 만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모른다는 것이 생존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적인 과정이 학습에 의한 기억이고, 이를 담당하는 것이 뇌이다. 사자라는 동물의 존재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새끼사슴은 불행하게도 그의 손쉬운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나는 학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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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한 학습과 뇌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

 

끊임없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 회상, 재인, 상상, 공감…

학습과 관련하여 이 교수가 설명한 뇌의 첫 번째 인지기능은 회상(回想; Recollection)이다. 과거에 벌어졌거나 경험한 일을 기억하는 기능이다. 미술작품이나 노래의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낭만적인 단어지만, 뇌인지과학 면에서는 경계해야 할 점이 있는 기능이다. 인간의 뇌 조직 중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순간적으로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나중에 그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 회상인데,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착오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통사고의 목격자가 여럿일 때 나중에 진술을 들어 보면 각각 기억에 차이가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두 번째 뇌의 기능은 재인(再認; Recognition)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알아내는 과정인데, 앞의 회상과 다른 점은 재인은 그 대상이 바로 현재 시점에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당장 펼쳐지고 있는 대상에 대하여 과거의 비슷한 기억과 대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인 과정에서도 과거의 기억이 당초에 잘못돼있던지, 아니면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제3자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일 것이다.

 

이인아 교수는 뇌가 학습한 것을 기억하는 방법에 따라서 서술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점도 설명한다.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처럼 말(논리)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을 의식적으로 뇌에 저장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책을 보면서 깨달은 지식, 수업 중의 질문과 대답,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대비되는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이란 일정한 순서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된 기억을 일컫는다. 어렸을 때 배운 피아노나 자전거 타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사실 문을 여닫는 단순한 동작도 이미 내재된 기억이 무의식중에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매번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아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반사적으로 뇌에서 지시를 받아 행동으로 연결되게 된다. 이 외에도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想像; Imagination), 본인과 직접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공감(共感; Empathy) 등의 정신적 활동도 모두 학습을 통한 뇌의 기억이 작용하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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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 신경회로, 신경망에 대한 설명

 

생리학적으로 본 머리 안쪽

뇌(Brain)라는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의 역할을 생물학/생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다른 장기(臟器)와 마찬가지로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즉,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도 혈관을 통하여 각종 영양분과 산소를 포함한 피(혈액)를 공급받아야 제대로 기능을 하는 것이다. 뇌세포를 뉴런(Neuron)이라고 하는데 뇌세포가 서로 연결되는 것을 신경회로(Neural circuit), 이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 구조를 신경망(Neural network)이라고 부른다. 뇌세포 사이에서 전기신호에 해당하는 화학물질을 주고받아 정보를 전달하는 오묘한 부분은 시냅스(Synapse)라고 한다. 이 밖에도 위에서 말한 해마가 회상과 재인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임을 최초로 알게 해준 HM(Henry G. Molaison)이라는 환자에 대한 약간은 슬픈 뒷얘기 등, 이인아 교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인 얘기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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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세포 간 정보전달 체계인 시냅스의 오묘함에 대해 설명하는 이인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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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해준 최초의 환자 HM

 

강사인 이인아 교수와 같은 뇌인지과학자들은 궁극적으로 수십억 개의 뇌세포가 어떻게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만들어 내는지 그 비밀을 풀려고 하는 연구자들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서 어떤 뇌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또 왜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성되거나 정상세포가 이상(異常) 뇌세포로 변하는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가끔 보이는 뇌전증(간질) 환자는 해마의 일부분이 비정상적으로 기능을 해서 신경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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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잊지 못하는 HSAM 증후군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뇌가 건강하려면

청중이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치매와 연관된 얘기로 강의가 흘러간다. 나이 들면 자꾸 뭔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뇌인지과학 측면에서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주제이다. 이인아 교수는 나이와 뇌의 인지기능은 큰 상관이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머리(뇌)는 나이와 관계없이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희망적인 얘기다. 영국 런던의 나이 든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연구해본 결과, 복잡한 도로 사정을 꿰뚫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뇌의 해면이 더 발달한 것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어느 정도 저절로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HSAM 증후군(Hyperthymesia)이란 것이 있는데, 지난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자서전을 쓰듯 모두 기억하는 증세라고 한다. 수험생이라면 배운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결여된 잡다한 기억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점이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AI)의 윤리성에 대하여 장차 제기될 수밖에 없는 화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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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으로 망각의 중요성을 주장한 미국의 William Jame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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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뇌를 유지하기 위한 Tip

 

그리고 뇌를 건강하게 하는 특별한 운동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뇌인지과학 면에서 보면 뇌세포가 활성화되는 과정에는 학습/인지의 동기(動機)가 중요하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세상일이 모르는 것투성이고 호기심이 많아서 이리저리 기거나 걸어 다닌다. 나이가 들면 세상일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동기 수준을 높이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나이가 들더라도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는 빡빡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건전한 스트레스는 긴장을 유지시켜 주고 생존에 필요한 학습의 욕구를 불러일으켜 뇌의 인지기능을 활발하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알고 보니 숙명적인 인간의 평생 학습

한국인들의 교육열이 남다르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이다. 그런데 입시와 연관되는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여러 가지 학습에 열심인 것이 요즘의 경향인가 보다. 2030세대는 취업에 필요한 자격이나 기술을 더하기 위해서, 또 중장년들은 은퇴 후를 대비해서, 여기에 노년에 접어든 어른들까지 배울 거리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이런 정도면 학습본능(學習本能)이라고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알고 보니 학습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숙명이란 점을 깨달은 오늘의 강의였다.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parkdongwon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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