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만의 요리 아니죠! 모두의 요리가 되거든요.”

<성동50플러스센터> 호우, 폭염 건너가세요. ‘물위의 조각편수 만들기

 

 

극한호우로 명명된 장맛비가 전국을 덮쳤다. 그 앞뒤로 지속되었던 폭염, 아이들은 이제 방학에 들었고, 여름휴가를 떠나기 바로 직전인 지난 722일 토요일 아침 10, 카페봄이에서는 여름음식 만들기 강좌가 열렸다. 여름을 건너갈 비책의 요리명은 <편수-片水>. 물 위의 조각 만두들을 찾아 카페 봄이를 찾았다.

카페봄이는 성동50플러스센터 카페의 이름이다. 직각을 이루 두 개의 벽면에는 외부를 볼 수 있는 큰 창들이 나있다. 거기로 나무들이 살랑이는 모습과 고요히 고딕양식으로 서있는 한양대 본관을 올려다볼 수 있다. 햇살 가득한 이 카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내는 작은 부엌 공간이 구석에 있고, 열두 명쯤은 너끈히 모여서 넉넉히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큰 식탁도 창과 창이 만나는 자리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모여 여기서 음식을 만들고, 작은 식탁마다 카페봄이가 내놓은 건강 수프와 커피도 먹는다. 이곳은 카페면서 또 광장이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나 혁명이 카페를 진앙지로 했다는 말은 괜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먹어야 비로소 눈이 떠지고, 만나고 함께 먹다 연대와 힘이 생겨난다. 일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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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쥔 한 줌의 밀가루 반죽으로부터 편수가 시작된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임금의 요리만은 아니죠. 문화는 서로 섞이니까요.

 

편수는 흔히 해 먹는 요리는 아니다. <임금의 여름상 편수>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 요리는 임금이 드셨던 음식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이날 강의를 맡은 궁중요리전문가 이소연 님의 말.

전국에서 좋은 식재료는 모두 임금님에게 진상이 되지요. 그러니 임금님은 전국의 좋은 음식을 다 드세요. 근데 그게 임금님만으로 끝나나요? 만드는 이들이 계속 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가댁이나 양반댁에서 가서도 그 요리를 하게 되지요. 그걸 만드는 하인들, 잔치할 땐 이웃 사람들이 있거든요.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하고도 나눠서 하고, 또 먹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백성들의 음식이 되는 거구요. 그렇게 우리들의 음식 문화가 만들어져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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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50플러스센터 카페봄이에서 진행된 <여름나기 음식 만들기> 클래스. 이소연 강사가 수강생들 앞에서 요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작은 강의는 각 집으로각 집의 가족들과 이웃들로 퍼져갈 것이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하나의 요리 앞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여기 여름나기 음식 수업을 듣는 이들 또한 다양하다. 오늘의 수강생 조숙경 님에게 이 요리는 창업 준비과정의 하나다. 바쁜 워킹우먼으로 그녀에게는 이 만두는 생애 첫 만두이기도 하다. 해서 만두는 삐뚤빼뚤하고, 간혹 구멍도 생겼지만, 눈빛은 진지하고 손짓은 꾸준하다.

오래 다녔던 회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생의 첫 전환인데, 창업하려고요. 한과 같은 쪽으로 하고 싶은데, 요리 자체에도 익숙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청했죠. 1인 기업을 하게 되면 여러 능력이 필요할 테니까, 이곳 성동센터서 스마트폰 교육도 받고요. 마케팅도 중요한 부분일 테니까, 그런 것도 배우고 있어요. 이런 쪽에 특화되어있는 곳은 성북50플러스센터 같은 곳이더군요. 내일배움 카드를 활용해 더 다양하게 배워야죠.”

이날 수업은 두 명씩 조를 이루었다. 이소연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제비뽑기를 시켜 짝을 지어주었다. 우연에 따라 함께 일할 상대가 선정되었다. 50플러스는 사람도 플러스가 되는 곳이다. 열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한 조가 된 두 분은 오순도순 소꿉장난하는 마음으로 실습을 시작한다.

 

 

한 그릇 요리 앞에 다양한 사람들 서로 만나다.

 

수강생 중 한 분은 장성한 자제들을 두었다. 해서 집밥은 저녁만 먹는다. 아침은 각자 간단히 먹거나 먹지 않고, 점심은 대개 밖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성동50플러스센터서 진행하는 여러 수업에도 두루 참여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다. 정리수납이나 몸살림 운동이나, 요가도 배웠다. 오늘의 편수요리는,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에 왔다. 가족들이 이 특별한 요리를 기쁨의 박수를 칠 터이다.

김치찌개 같은 요리를 했으면 저도 안 왔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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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생들이 밀가루 반죽으로 만두피를 만드는 과정을 실습해 보고 있다. ‘선진장비를 체험하는 일도 이곳에서 가능하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또 다른 분이 한마디를 보탠다. 이분은 밥상 지킴이다. 따뜻한 집밥의 힘을 믿는다. 해서 혹시라도 자신이 늦어질 일이 생길 때면, 먼저 밥은 눌러두고, 반찬은 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사랑의 힘으로, 자진해 하는 일이지만, 음식엔 언제나 그만큼의 공력이 들어야 한다. 그러니 오늘처럼 디테일한 조언을 얻으며 과업을 성취해 낼 기회는 놓칠 수 없다. 뿐인가? 전문가의 깊은 공력도 전수받을 수 있다. 이소연 강사님의 팁

한식에서 양념은 대략 규칙이 있어요. 고기 간을 할 때는 100그램에 대략 간장 한 스푼을 써요. 오늘은 표고가 함께 들어가니까 조금 더 쓴 거고요. 파와 마늘을 같이 쓸 때는 파가 둘에 마늘이 하나로 비율을 정해요. 식초와 설탕은 대개 일대일로 써요. 비율이 대개 같아요. 궁중요리를 할 때는 재료마다 간을 해요. 만두소를 넣을 때 물기를 짜지 않으면 나중에 터져요. 과정을 잘 지키죠. 정성이 깃드는 거예요. 그래야 제대로 된 요기가 나와요.”

편수에 필요한 요리 재료는 이미 준비됐다. 여름에 많이 나는 야채 호박과 언제든 아삭하고 편안한 식감을 주는 숙주가 메인이다. 소고기는 아롱과 사태를 준비해서 국물을 냈고, 고기는 편을 썰거나 채 썰어 양념을 살짝 넣어 고명으로 준비한다.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를 따로 분리해 지지면 노란색, 희색의 고명이 준비된다. 잣은 동동 띄울 수도 있고, 살짝 만두안에 넣을 수도 있는데, 오늘은 만두 안에 넣는다. 밀가루엔 치자, 쑥가루, 자색고구마가루 혹은 시금치나 당근즙 물을 넣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은은한 색이 도는 천연색 편수가 나온다.

임금의 밥상이 백성들의 밥상으로 스민다. 이것이 문화가 퍼져가는 방식이다. 그건 예와 이제가 다를 수 없다. 이곳 센터에서 벌어지는 여름나기 요리는 그저 한 번의 원데이 클래스가 아니다. 이 방식은 가을맞이-추석명절을 나는 며느리들의 특별요리-, 겨울나기-동지팥죽 해보아요-, 봄맞이-달래와 쑥이 나왔어요-(기자의 가상 요리 교실이다) 요리 교실로도 뻗어갈 수 있다. 50플러스센터의 클래스는 전환기를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임팩트있는 강의를 매번 다양하게 준비한다. 강사 이소연 님도 그 한 사례.

원래 언어 강사였던 이소연 님은 코로나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몸도 마음도 일도 지리멸렬 스러졌던 그곳에서 그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요리로 삶의 전환을 이뤘다. 황혜성 선생님의 따님인 한복려 궁중요리 연구가와의 오래된 인연이 이때 다시 이어졌다. 새로 시작한 요리 공부를 다 마치기도 전에 기회를 준 곳은 이곳 성동50플러스센터였다. 이곳에서 강의하며 음식의 가능성,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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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 이소연 님 스스로가 생애 경로의 전환자다. 성동50플러스센터에서 요리 강사로 첫발을 디뎠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직접 요리 만드세요. 자립부터 관계까지 펴지니까!

 

조리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강사는 함께 편수를 앞두고 앉았다. 만두는 양지와 사태를 두 시간 은근히 끓여 국물을 내고 겨자로 간하고, 차게 식힌 육수 위에 떠있다. 내 손으로 만들어 내 입으로도 상대의 입으로도 들어가는 음식을 보는 얼굴들은 편안하다. 생의 전환기를 맞는 긴장도, 지루한 밥상에 포인트를 주려는 의욕도, 한 밥상 위에서 잠시 치워놓는다. 이제는 맛난 시식을 할 시간이니까.

이주 전쯤인가 마장동에서 벌어지는 아버지들의 수다(手多)모임에 간 기억이 났다. 그날은 마장동 소재의 <성동구 1인가구지원센터>의 공유주방에서 아빠들의 행복한 밥상일품요리 만들기 클래스가 열렸더랬다. 두반장돼지고기볶음 요리는 아빠들 술안주로도 좋지만, 아이들의 반찬으로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반찬 할 걱정을 던 주부의 시름도 덜 한 것일 터. 중년의 남자들이 집에선 하지 않던 앞치마를 두루고 요리대 앞에 섰었다. 비록 흰 연기가 자욱해 연신 환풍기를 틀었고, 요리를 마치고 나자 설거지거리가 언덕처럼 쌓이긴 했었으나, 그 자리에도 직접 만드는 요리에 대한 작은 기쁨들이 가득했었다.

박상철 교수는 서울대 노화연구소장 시절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중년의 남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요? 그건 단연코 요리일 거예요. 스스로 자기 밥상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적어요. 밥해주던 부인이 죽으면 며느리 눈치 보다가, 딸한테 기대다가, 자기 인생이 망가집니다. 스스로 밥할 줄 알아야 자립합니다. 요리까지 할 줄 알면, 한상 차려 대접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거기서 관계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기자에게도 그들이 직접 조리한 한 접시의 편수가 놓였다. 이 한 대접의 요리엔 정성껏 빚은 색의 향연이, 두루두루 영양이 듬뿍했다. 자립과 관계, 사회적인 역할의 분담 같은 메시지들도 거기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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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요리한 한 그릇의 음식. 스스로 지어낸 성과에 만족감이 인다. 이 한 그릇을 함께할 사람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요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사회와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iskarm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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