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로 세상읽기]<6>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스마트한 세상, 사고의 힘 키우는 법

생각하며 읽고 말하고 써야 깊은 사유

이미지 = 최정문
 

요즘 세상은 머리 쓸 일이 드물다. 도무지 생각할 일이 없다. 오늘 하루 당신은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는가. 얼마나 머리를 썼는가. 운전만 하더라도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너끈히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시는지. 행여나 이정표를 놓칠세라 도로 표지판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조수석 포켓엔 너덜너덜한 지도책 한 권쯤은 있었을 터다. 그렇게 어렵게 길을 찾아가더라도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는 결국 차를 멈추고 유리창 손잡이를 빙빙 돌려 내리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어봐야 했다. 우리의 머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리하며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편안히 앉아 딴생각해도 내비게이션 화면과 안내 음성만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면 된다. 행여 길을 잘못 들어도 경로를 다시 탐색해주는 너무도 친절한 내비게이션이므로.

당신은 전화번호를 몇 개나 외우는가. 숫자라면 머리에 쥐가 나는 타고난 수포자인 필자조차도 그 옛날 삐삐 시절엔 전화번호 서른개 남짓은 거뜬히 외웠다. 삐삐가 울리면 뜨는 번호만으로 가족, 친구, 직장동료인지 냉큼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너덧개조차도 자신 없다. 언젠가 폰을 두고 나온 날 큰아이에게 급히 연락을 해야 하는데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통에 빌린 폰을 들고서는 한참을 쩔쩔맸다. 분명 아이의 생일로 만든 끝 번호였건만 스팸문자가 왔다고 별스럽게 전화번호를 몇 차례 바꾼 터라 그 요망한 네 자리 조합이 끝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스마트한 세상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후예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생각 주머니로 일상을 살고 있다. 챗GPT 등 컴퓨터는 나날이 똑똑해지고, 그만큼 우리는 갈수록 바보가 되어간다. 빈약한 사고는 빈약한 머리를 만드는 법. 어지간히 살 만큼 산 우리 어른들이야 그저 살던 대로 살다가 가면 그만이겠지만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들은 이름하여 ‘알파세대(201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고 불리는 디지털 온리(only),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쓰나미에 온몸을 내맡겨야 한다.

생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하는 세 가지 방법은 읽기와 말하기, 쓰기다. 하지만 그저 생각 없이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은 안 된다.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쯤이야 아무런 생각 없이 읽을 수 있고, 의미 없는 농담이나 수다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하기도 있으며, 그저 끄적거리는 낙서 따위도 분명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것이다.

생각하며 읽기, 생각하며 말하기, 생각하며 쓰기. 이 세 가지는 우리의 머리에 반짝반짝 불을 켜고 깊은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나의 경험과 생각에 저자의 생각이 개입해 편집과 재구성이 이루어진다.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문맥을 보고 한참을 궁리하며 그 뜻을 유추하고, 뇌리를 때리는 문구를 보면 곱씹으며 침잠하기도 한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재해석돼 하나에서도 백 개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독서하는 동안 우리는 나만의 책을 쓰는 저자가 되곤 한다.

말할 때 역시 상대의 생각과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며 우리 머리에 불을 밝힌다. 단순한 대화를 벗어나 토론이나 강연 등 더 정교하고 지적인 말하기 단계에 이르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정교해지고 다듬어진다. 필자는 오랜 강연을 통해 의식의 부침과 고양을 많이 겪었다. 분명 똑같은 교안으로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건만 청중과 상황에 따라 내 머릿속은 분주해지고 어느덧 너무도 다른 색깔의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 청중이 더욱 능동적으로 강의에 참여하고, 머리에 불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글쓰기 또한 더 말할 필요 없이 정교한 사고를 동반한다. 글을 쓸 때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의 의식을 헤집으며 단어와 문장을 늘어놓게 된다. 이윽고 사유는 깊어지고 생각은 정리되며 한 단계 올라간 의식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쓴 글을 고치는 것 또한 끊임없는 사유를 동반하는 작업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 제목이 있었다. 똑똑해지고 싶다면, 읽고 말하고 써야 한다. 이것이 머리를 살리는 세 가지 비결이다. 문자와 거리가 먼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것들이다. 읽고 말하고 쓰며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깊이 고민하고 더 깊이 궁리해야 머리엔 불이 밝혀지고 비로소 진정한 호모 사피언스 사피엔스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존의 힘! 그것은 바로 생각의 힘이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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