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프랑스

 

 

손동기 (한국외국어 대학교 EU연구소 초빙연구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강하다. 왜냐면 나이를 들어가면서 비워지는 생활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역량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비어있는 일상의 시간으로 인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상실을 느끼며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랑스는 노인들의 일상의 시간을 채우고 가꾸기 위한 공공문화정책을 1980년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강화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을 통해서 급속히 고령화가 되어가는 우리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군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러한 과정을 최대한 천천히 겪고 싶어 한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야지’ 하는 마음에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어릴 때의 마음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나이를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왜 이렇게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할까? 노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동반자 혹은 주변인들의 사망으로 고독해지는 가운데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역할 부재(roleless role)’의 ‘4고(苦)’를 겪는다고 흔히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사회보장제도의 발달과 함께 빈곤과 질병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으로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노인 개인에게 찾아오는 고독과 역할상실은 사회적으로 크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노인 개인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큰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보다는 ‘처분해야 하는’ 또는 ‘채워야 하는’ 시간의 의미가 강하다. 그 때문에 노인들은 ‘역할 없는 역할(roleless role)’로 인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의미 없는 시간으로 채워지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 차원에서 노년기가 이제는 ‘남는 여분의 삶(餘生)’의 총량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저자가 프랑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프랑스는 이미 1980년부터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경제적 측면과 아울러 그들의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노인들의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 활용에 대한 문제까지 정책적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의 노인들은 사회적 가족의 돌봄을 받는다

 

프랑스 대사전 ‘Le Petit Robert’에 따르면 가족은 ‘같은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체’라고 나온다. 가족은 성과 혈연의 유대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작은 단위의 사회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가족의 형태가 핵가족·확대가족·직계가족·결합가족 등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한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3분의 1 정도이고, 점차 ‘한부모가족(familles monoparentales)’, ‘결합가족(famille recomposée)’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혼외출생(naissance illégitime)이 59.7%에 달하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프랑스에서 점차 축소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가족문화는 전통적인 ‘혈족(consanguinité)’ 보다는 ‘사회적 연대’에 의해서 규정되는 성격이 강하다. 즉 프랑스 사회는 가족의 유대가 ‘혈연’ 또는 ‘핏줄’과 같은 생물학적인 관계가 아닌 문화적인 관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전통적 가족의 기능보다 ‘사회적 가족’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그 결과 프랑스의 노인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노인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토대로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꾸미고 있다.

 

 

너무나 바쁜 그리고 할 일이 많은 프랑스 노인들 뒤에는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이 있다

 

저자가 처음 프랑스에 어학을 공부하러 갔던 2000년부터 2017년인 현재까지 알고 지내는 프랑스 노부부가 있다. 이들은 직역하면 ‘환영가족(Famille d’accueille)’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가족과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 전 아니면 한 달 전에는 약속을 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상이 항상 다양한 스케줄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통화하게 되면 할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정원 가꾸기와 집 인테리어 그리고 할머니는 그림그리기와 댄스 등 자신들 개인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와 곧 떠날 여행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너무나 행복해하셨다. 이들은 지방에서 정육점을 하던 개인사업자와 사회서비스를 하던 공무원들로 재혼을 한 커플이다. 딱히 경제적으로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부유하지도 않은 프랑스 지방에 사는 평범한 노부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루하루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이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Politique Culturelle Publique)’라고 볼 수 있다. 할아버지가 즐기시는 정원 가꾸기, 집 인터리어, 그리고 할머니가 즐기시는 그림그리기와 댄스 모두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교육 서비스를 통해서 이뤄진다. 이처럼 많은 프랑스 노인들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자신의 취향(Le Goût)에 맞는 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에서 찾아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그들의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가 전 생애주기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노인들의 개인적인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노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노후를 보내고 싶은지를 스스로 고민하면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럼 프랑스는 어떻게 노인들 개인의 선택을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가?

 

 

프랑스 공공문화정책은 자유시간 활용에 있어서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

 

프랑스 노인들의 노후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어쩌면 무료할 수 있는 긴 노후에 대해서 프랑스 정부가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 활용에 대한 문제까지 정책적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프랑스는 국가적 차원에서 2003년부터 성공적 노후를 위한 ‘노후 잘 보내기(Bien Vieillir)’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노인들의 건강·생활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사회적·예술적·문화적 참여 증진(Le renforcement du rôle social des seniors en favorisant leur participation à la vie sociale, culturelle, artistique)’도 함께 고려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정부는 건강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자 하는 노인부터 돌봄이 필요한 노인까지 각 특성에 맞게 노인들을 재정의하고, 이에 맞춰 차별화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노인들에게 단순한 소득보장 차원을 넘어선 다양한 문화정책을 통한 노후의 생활의 질까지 노인(사회·문화)복지정책의 범주에서 다루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노인문화정책으로는 노인클럽(les clubs du 3ème âge), 노인대학(UTA:Université de Troisième Âge), 은퇴자 클럽(Club des Retraités) 등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제공되는 여가 및 교육 활동을 통해서 프랑스 노인들은 풍성한 노후를 보장 받고 있다. 이러한 공공문화서비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프랑스는 ‘접근성(Accessibilité)’과 ‘이용성(Utilisabilité)’을 동시에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을 크게 ‘문화접근도’를 향상하는 시기와 ‘문화이용도’를 강화하는 시기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문화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의 제공이 이뤄진다. 아래 그림처럼 문화정책의 시행을 외적요인으로 본다면 이로 인해서 단기적으로는 개인의 관심이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의 관심과 흥미는 문화에 대한 접근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문화접근도의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요인을 약화시킴으로 인한 개인의 문화에 대한 접근을 촉진 시킬 수 있다.

 

한편 문화접근을 통해서 개인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고려하게 된다. 아무리 문화적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정책의 수혜자가 느끼는 만족도는 낮아질 것이고 이는 결국 접근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속적인 이용은 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초기에 느꼈던 흥미는 떨어질 수 있다. 이에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이용의 동기부여나 의미부여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보상은 금전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성숙되는 자신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 등등 다양한 형태의 보상이 따를 수 있다. 즉 문화이용도는 개인의 소득과 같은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개인의 문화에 대한 경험, 인식의 차이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림 1> 여가경험요인과 문화정책

 

 

문화이용도는 문화에 대한 욕구나 보상에 대한 기대와 같은 개인의 내적요인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문화정책에 이행에서 중요한 것은 거시적으로는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의 제공이 중요하지만, 미시적으로 개인을 분석단위로 하여 다양한 수요자의 욕구를 반영함으로써 지속적인 문화 정책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다양한 개인의 문화향유 욕구를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문화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문화정책을 발전시킴으로 시민들의 문화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 노인들은 여가를 통해서 좋은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 속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소비하는 여가가 아닌 ‘채움’과 ‘생산’의 여가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노인들의 노후는 공공의 역할 다른 말로 한다면 ‘사회적 가족’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행복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1958년부터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공문화정책을 ‘문화향수의 기회의 제공’에서 ‘적극적 활동 참여를 이끌어 내기’를 위한 정책적 변화를 통해서 발전시켜오고 있다. 개인들의 생애주기별 또는 세대문화에 맞는 여가활동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사회∙문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은 다양한 개인의 ‘문화적 취향’을 인정하고, 이러한 취향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 구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의 공공문화정책을 통해서 프랑스 노인들은 즐겁고 활기찬 노후를 가꾸어 갈 수 있고, 이들을 지켜보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들은 나이 들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문화를 통해서 프랑스는 사회적 가족으로서 서로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어느 사회보다 인구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노인들의 삶이 보장되고 있지 못한 우리는 현재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물론 경제적 안정화가 제일 시급하고 중요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경제적인 측면 이외에 노후의 삶의 질과 관련해서 노인들의 자유시간 활용의 측면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본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첫째, 프랑스의 노인들을 위한 문화공공정책이 시사하는 점은 정책의 중심에 정책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수요자의 욕구 창출과 수용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존 노인세대와는 다른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세대로 편입이 점차 진행되면서 노후의 삶의 질과 관련해서 공공문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오래 사느냐’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노인 세대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일괄적인 문화 프로그램 혹은 노인복지회관과 같은 하드웨어 공급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어 오고 있다. 물론 수요자의 만족도나 효율성 측면에서 현재의 하드웨어 공급이나 천편일률적인 문화여가프로그램의 역할이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문화향유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의 취향, 개성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공공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현재 한국의 노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데 이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노인들이 노후에 주어진 자유시간 활용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인 즐거움 또는 자기만족을 추구할 수 있는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 범주를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공공문화정책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그 교육을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자본형 여가활동’을 위한 정책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랑스는 공공문화정책을 통해 노인들의 개인적인 삶의 질 제고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을 마치면서 기대를 해본다. 우리나라 문화정책도 이제는 노인들에게 ‘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감을 증진 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나도 우리 할아버지처럼 늙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