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세이] 무모함도 능력이라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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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시네요!”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늘 따라오는 반응입니다. ‘내가 능력자였나?’ 아.. 정말 때때로.. 아니.. 자주 저는 능력자이고 싶습니다. 같은 부모가 낳아 같은 환경에서 키웠는데 타고난 성향을 증명하듯 각각 다른 성향의 아이 셋을 보란 듯이 잘 키워낸 능력자 엄마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단 경제적 능력에서 탈락입니다. 요즘은 경제적 풍요로 시간의 자유를 얻는게 최고라는데 경제적으로 풍요라는 단어를 쓰기 어려우니 일단 탈락인 거죠.

 

그래도 할 말은 있습니다. 큰딸은 저보다 야무진 엄마가 되었으니 잘 자랐고 둘째 딸도 잘 자라 제 한몫하고 있으니 역시 그만하면 잘 자랐습니다. 아직 자라는 중인 고딩 꼬맹이도 마음이 착해 50점은 먹고 들어갑니다. 착하게 자라면 되는 거죠 뭐. 좌우간 이래저래 봐줄 만한 능력자는 아닌 걸로 해야겠네요. 하긴 아닌 들 누가 뭐라겠습니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9층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습니다. 딸만 하나 있는 그녀는 이십여 년 전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알게 된 친구입니다. 그녀의 딸과 제 큰딸도 나이가 같습니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둘이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셋으로 늘었을 때 그녀의 반응이라니. 셋째를 가졌을 때 그녀는 엄마인 나보다 더 걱정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같이 수영하던 언니들도 비슷했지요. 하긴, 예전처럼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다시 생각해도 참 쓸데없이 용감한 점이 있습니다. 가끔 무모한 건가 고민도 합니다.

 

아이가 셋이라 그런지 제 아이들은 나눠가진 사랑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제가 가진 백을 다 주었어도 아이들이 느끼는 사랑은 삼분의 일이었습니다. 가지지 못 한 삼분의 이는 늘 허기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주지 못 한 삼분의 이가 어깨에 얹혀 저는 점점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확실히 세 아이를 키우는 건 능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무조건 아이에게 백을 줄 수 있는 능력. 아이가 셋이면 삼백을 줄 수 있어야 능력자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동동거리는 제 생활에 비해 그녀는 늘 여유로웠습니다. 제가 큰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와 여전히 씨름을 할 때 그녀는 우아하게 커피를 마셨습니다. 씨름하던 둘째까지 학교에 보내고 다시 갓난아이를 키우느라 진땀을 흘릴 때 그녀는 한강으로 조깅을 다녔지요. 그녀가 외동딸에게 온전히 백만 원을 쓸 때 저는 세 아이에게 떡을 자르듯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똑같이 나누지 못할까 봐 걱정한 적도 없었어요. 그때그때 급한 불 끄기도 바빴으니까요. 아이마다 온전한 백만 원을 못 쓴 게 미안해서 마음은 온전한 백을. 아니 그 이상을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나라 외로워”

 

그녀가 말했습니다. 형제 없는 딸이 외롭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대신 부모한테 온전히 받았잖아. 외로움은 감수해야지 뭐. 요즘은 친구를 만들더라.”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그녀가 내렸습니다. 아이가 셋인 저는 능력자 아닌 게 걱정인데 딸 하나 잘 키운 그녀도 걱정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인생이 늘 그렇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아이가 저 혼자 쑥쑥 자라주면 둘이건 셋이건 무슨 걱정일까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경제적 형편이 별로 여유롭지 않은, 아이가 열 쯤 되는 가족을 TV로 봤는데 이상하게 부모보다 아이들이 안쓰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쉴 틈 없는 부모와, 가끔 티격이다 우는 어린아이들과 그 동생을 돌보는 게 일상이 된 큰 아이들. 잘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생들이 많아서 좋다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물론 제 느낌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동생이 넷이나 되는 제 어릴 적 상황이 떠올라 그런 마음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능력을 모른 덕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딸 둘은 성인이고 늦게 낳은 꼬맹이도 많이 자랐습니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닥친들 툴툴 털고 넘어가면 됩니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후회하면 달라질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세 아이를 낳은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앗! 그러고 보니 이 무모함이 제 능력이었네요. 덕분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꽤 괜찮은 능력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당신은 어떤 능력이 있나요?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정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