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세이]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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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이 또다시 긴박해져서 대면 활동이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데요. 우연히 아주 오래전의 영화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961)>을 보게 됐습니다. 수십 년 전의 영화지만 주인공들은 여전히 멋지더군요. 1920년대 미국 캔사스의 작은 마을이 배경이니 지금과는 참 많은 것이 다릅니다. 영화의 갈등구조도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당연히 순결이 요구됐죠.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요. 나탈리 우드가 열연한 ‘디니’와 워렌 비티가 맡은 ‘버드’는 한마을에 살며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연인입니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었지만 이들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억압 등으로 갈등을 겪으며 이별을 맞게 되죠.

 

 

 

 

결국 디니는 신경쇠약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상처를 치유해가고, 버드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대학에 갔지만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토록 서로에게 간절했던 연인의 삶이 이제 평행선을 긋습니다. 풋사랑이었지만 너무도 순수하고 깊었던 사랑으로 힘들던 시간이 지나고 디니가 드디어 병원을 나서던 날, 의사가 묻습니다.

“버드를 만날 거니?” 그리고 답을 말해줍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맞서야 아무렇지 않게 될 수 있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버드를 만나고 돌아서며 디니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를 읊조립니다. 고교 시절의 어느 날, 사랑의 고통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던 디니에게 선생님이 일어나서 읽으라고 했던 바로 그 시였습니다.

 

초원의 빛 꽃의 영광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올 수 없다 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그날 디니는 시를 낭송하다가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뛰쳐나갔죠.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다시 읊조리는 그 시구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메아리로 돌아옵니다. 이제 소녀가 아닌 디니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요?

 

 

 

 

우리에게 알려진 시 ‘초원의 빛’은 조병화 시인이 의역해서 더 소녀소녀 한 문장으로 시작됐죠.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마름하는 날 /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이 시구 때문에 먹먹해진 적이 있는 이들이 이제 50플러스 세대가 되었겠죠?

아마도 영화는 워즈워드의 이 시 덕분에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기억되었을 거예요. 이 시는 독립적인 작품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불멸성을 깨닫는 노래>라는 장시의 일부인데요, 디니가 읽은 부분은 이렇게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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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이제까지 있어왔고 또 존재할 시적 감수성을 통해

 

마음을 위무하는 생각은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난다

 

죽음을 겪고서야 비로소 보게 되는 신앙을 통해서

그리고 지혜를 가져다주는 세월을 통해서


 

 

봄날의 설렘이 지나고, 초여름 신록의 눈부심도 사라진 자리에서 문득 디니가 읊조린 시가 마음에 콕콕 박힙니다. 눈부신 시간이 지나가버린 지금 남은 것들에서 힘을 찾아야 한다는 시구를 떠올립니다. 계절의 끝자락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도 그렇겠죠. 하지만 디니에게 버드를 만나는 일이 두려움이었던 것처럼 종종 지난날을 대면하는 일도 두려움입니다. 분명히 위로와 기쁨만이 아니라 실패와 슬픔의 자취가 너덜너덜하기도 하니까요.

 

 

 

 

그럴 때 또 누군가의 글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 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성석제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서 담담하게 나눠주는 말에 기대 한때 눈부셨던 내 안의 기억들과 그 그림자까지도 겸허하게 바라볼 힘을 얻습니다.

 

 

 

 

이제는 종종 가을 같은 서늘한 바람이 스칩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모든 게 떠나고 난 숲에서 지난날을 고마워하며 내 안에 뿌려진 씨앗을 돌봐야겠습니다. 때론 초라하기도 하고 때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지난 시간의 수고를 위로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렵니다. 우리 다들 수고가 많았잖아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남겨진 것들, 뿌려진 것들을 잘 살펴가 보렵니다. 그것이 나이 듦의 미덕이자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니 나이 드는 일이 꼭 슬프거나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군요.